“불편이 현실의 감사함으로”… 드림빅 장학생 17살 청춘들이 필리핀에서 만난 ‘나’

데일리안(필리핀) = 유명준 기자 (neocross@dailian.co.kr)

입력 2025.08.23 09:53  수정 2025.08.28 17:00

34명의 17살 청춘들이 40L짜리 갈색 배낭을 메고, 8월 첫 주,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모였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도시빈민 지역 봉사를 위해 출국 준비 중인 드림빅(Dream Big) 장학생들이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이 아닌, 배낭을 멘 봉사활동이기에 표정들이 복잡했다. 기대하는 눈빛도 있지만, 무덤덤한 표정도 보였다. 5박 6일 필리핀 일정의 시작이었다.


드림빅 장학생들은 DB김준기문화재단이 보호대상아동 중 내부 기준에 맞춰 선발해 중학교 3학년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장기 장학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학금 지원만 하지 않는다. 멘토링과 성장캠프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적인 성장을 돕는다. 이번 해외 봉사활동 역시 그러한 성장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여기에는 34명의 청춘을 위해 드림빅 서포터즈로 구성된 6명의 멘토들도 합류했다.


4시간여를 지나 도착한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카이오 국제공항. 이들의 등장은 단숨에 필리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았다.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한국의 아이들이 태극기 마크를 단 무거운 배낭을 메고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들의 첫 일정은 ‘필리핀 알기’였다. 박물관과 유적지, 주요 장소를 찾았다. 공간은 배움의 흡수 속도를 달리한다. 앞서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찾았지만, 스마트폰 속 영상이나 사진이 아닌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은 장학생들의 시야를 단숨에 넓혀줬다. 특히 필리핀의 식민지 시대와 독립의 역사는, 장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박물관에서 본 필리핀 역사가 인상 깊었고 실제로 나라에 와서 들으니 더 와닿았다. 그다음으로 인트라무로스의 마닐라 대성당에 갔는데, 웅장한 건물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산티아고 요새에 갔는데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물이 적게 남아 있는데, 필리핀은 식민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본격적인 자원봉사를 하기 전에 장학생들이 방문한 지역은 바세코였다. 바세코는 세계 3개 빈민가 중 하나로 불리는 지역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주민들이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프라스틱을 비롯해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는 장학생들에게 안타까움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세코 주민들이 마을 자치회를 중심으로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해 재활용해 가방이나 명함 지갑 등을 만들어 재판매하는 이야기는 장학생들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파는 것도 엄청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돈을 다시 사회에 되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저렇게 의미 있고 솔선수범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했다.”


이들이 2박 3일 홈스테이를 하며 자원봉사를 할 곳은 바공실랑안(Bagong Silangan)이다. 바공실랑안은 필리핀 국가 빈곤 위원회와 사회복지개발부 자료에 따르면, 메트로 마닐라 내 소외된 지역 중 하나다.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고, 물은 우물에만 의존하는 환경 속에서 약 300가구, 1200~1400명이 살아간다.


장학생들은 크게 세 팀으로 나뉘어 자원봉사를 진행했다. 첫 팀은 이번 해외 자원봉사 일정을 진행한 공감만세가 후원해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찾았다. 바공실랑안 중심부에서도 다소 먼 거리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찾은 장학생들은 자신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정원을 새롭게 가꿨다. 또 건물에 새롭게 시멘트 작업을 하며 어린이들이 편안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다른 팀은 바공실랑안 주민들이 운동하고 모임을 하는 공간인 푸드허브에 있는 정원 가꿨다. 오래된 나무와 잡초를 뽑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진 돌들을 치우며 새롭게 나무를 심었다. 다른 한 팀은 마을 내 어린이집 건물을 새롭게 단장했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내부를 정비했다. 그 사이 이들을 보러 몰려든 마을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함께 케이팝(K-POP) 노래를 들었고 불렀다. 짧은 기간에 진행되는 작은 봉사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이 남긴 흔적이 바공실랑안 사람들에게 분명 뚜렷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봉사보다 더 의미 있던 일은 장학생들의 2박 3일 홈스테이 과정과 바공실랑안에서의 생활이었다. 앞선 언급한 자원봉사가 장학생들이 바공실랑안 주민들 조금이라도 돕기 위한 일이었다면, 홈스테이는 장학생들과 바공실랑안 주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동시에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바공실랑안 현지 가정에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는 과정이 사실 쉽지 않다. 한국에서도 낯선 공간은 어려운 법인데,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해외인 필리핀, 그것도 도시빈민 지역이라는 바공실랑안에 위치한 현지 가정에서 2박 3일간 지내야 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낯설어하는 상황을 17살 장학생들이 경험해야 했다.


당연히 첫날부터 ‘투정’이 나왔다. 공간이 좁다느니, 커다란 벌레가 나왔다느니, 화장실이 불편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이곳저곳 들렸다. 그러나 이내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홈스테이 가족들 준비한 노력과 따뜻함, 이들을 바라보는 현지 아이들의 눈빛 그리고 하루 만에 찾아온 ‘익숙함’은 ‘투정’의 말을 쏙 들어가게 했다.


무더위 속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장학생들이 “너무 힘들고 더워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속의 ‘집’이 한국이 아닌 현지 홈스테이라는 것을 알고 서로 웃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국 이 익숙함은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바공실랑안 사람들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작별하던 날,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일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2박 3일간의 홈스테이에 관한 생각을 적은 내용을 발표하는 공간은 ‘웃음과 눈물’이 섞였다. 짧지만 환영받은 그 시간을 기억하며 어느 장학생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느 장학생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은 전파된다. 결국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고, ‘오열’ 수준의 장학생까지 등장했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그 공간에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나왔다. 바공실랑안 홈스테이 호스트들과의 어색했던 관계는 ‘좋았던 기억’을 지나 눈물이 됐고, 불편했던 잠자리는 그새 추억이 된 것이다. 2박 3일 동안 같이 지냈던 바공실랑안 사람들이 장학생들에게 남긴 흔적이다.


물론 34명 모두가 똑같은 추억을 갖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바공실랑안의 불편했던 공간이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겪은 경험은 이들을 성장케 했음은 분명했다. 그 공간과 경험이 한국에서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들이 적은 일기에 남아 있다.


“평소에는 일상에서 작은 불편에도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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