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에 “중국 공장에 미국산 또는 미국 기술이 들어간 장비를 반입할 때 건별로 허가받아야 한다”고 공지했다. 3년 전부터 이들 기업에 부여해 온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허가 예외 조치를 전격 철회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중국 내 한국 반도체 업체의 생산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 연방 관보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이 중국 내 생산시설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공급할 때 건별로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한 ‘포괄허가제’를 폐기한다고 밝혔다. 관보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120일 후 발효될 예정이다.
미 상무부는 앞서 조 바이든 정부 당시인 2022년 10월 미국산 장비의 중국 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하이닉스·인텔 등이 운영하던 공장에는 2023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부여해 사실상 이 규제를 무기한 유예했다. 이 덕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제외한 일반 반도체 장비는 별도의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들여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중국에서 장비를 구매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들 기업은 앞으로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미국 반도체 생산 장비를 들여올 경우 미국 정부로부터 매번 건별로 승인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관보에 따르면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번 대책으로 연간 1000건의 수출 허가 신청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와 KLA,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대(對)중국 매출은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중국 현지 장비업체들은 공백을 메울 수 있고, 메모리 칩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요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로이터는 내다봤다.
상무부의 이번 규제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 기업을 통해 중국으로 미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흘러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다 한·미 정상회담 개최 나흘 만에 공개된 만큼 중국의 ‘반도체 굴기’ 차단하고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업체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미국이 수출을 아예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장비 반입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는 정기적인 교체와 유지보수가 필수적이다. VEU 예외 조치가 철회되고 개별 장비 반입에 미국 정부의 승인 절차가 요구될 경우 장비 수급에 최장 9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장기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첨단 메모리반도체보다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를 중점적으로 만든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전체 물량의 35%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 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를 장쑤성 우시 공장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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