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쓴 후, 3D 영화는 영화산업의 구세주처럼 떠올랐다. 곧이어 온갖 3D 영화가 제작됐지만, 대부분 수준이 낮았다. 국내에서도 이 흐름에 숟가락은 얹은, 기이한 3D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기술적 한계와 콘텐츠 부족으로 ‘거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시장성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후 등장한 VR(Virtual Reality) 영화 역시 대중과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일시적 유행’이라는 회의론에 놓였지만, 세계 주요 영화제와 극장은 오히려 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관객에게 선보이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이 과정은 시대적 기술 환경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페이스북(현 메타)이 오큘러스를 인수하며 VR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소니·삼성·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VR 기기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애플이 ‘비전 프로’를 내놓으며 몰입형 기기를 고도화했다.
그러나 VR은 여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충분치 않고, 일부 마니아층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차세대 미디어 플랫폼으로 확장하기 위해 기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개인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기에는 가격과 환경적 제약이 크다. 바로 이 지점을 극장과 영화가 메웠다.
극장은 별도의 기기 구매 없이도 VR을 체험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췄고, 자연스럽게 VR 경험을 대중으로 확장시키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세계 주요 영화제들은 일찍이 VR을 실험적 서사와 새로운 관람 경험의 가능성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016년부터 VR과 XR 등 몰입형 콘텐츠와 관련 기술을 꾸준히 선보였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2017년 세계 최초로 VR·XR 부문을 신설했고 2018년 채수응 감독의 ‘버디’가 베스트 VR 상을 수상했다. 이어 김진아 감독의 ‘소요산’과 ‘아메리카 타운’, 김시연 감독의 ‘내 이름은’, 이상희 감독의 ‘원룸바벨’ 등 한국 작품들이 연이어 초청되었으며, 올해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역시 최민혁 감독의 ‘저녁 8시 고양이’, 채수응 감독의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 베니스의 선택을 받았다.
칸국제영화제는 한발 더 나아가 2024년 ‘몰입형 경쟁부문’을 마련해 VR 영화를 “스토리텔링의 경계를 넘어선 차세대 서사”로 규정했다. VR이 단순한 기술적 신기함을 넘어 영화예술의 새로운 화법으로 제시됐다는 평가다.
영화제가 주로 예술적 실험의 무대에서 VR을 조명했다면, 앞서 언급한 접근성의 강점을 바탕으로, 최근 국내 극장가에서는 VR 영화를 ‘체험과 몰입’을 내세운 콘텐츠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팬덤 규모가 큰 아이돌의 VR 콘서트 영화가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 성과를 거두자, VR 영화가 지닌 산업적 의미 역시 점차 확장되는 분위기다.
2022년 에스파 콘서트를 시작으로 블랙핑크, 차은우,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엔하이픈 등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VR 콘서트 영화를 제작해 스크린에 올렸다. 이 가운데 ‘하이퍼포커스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VR 콘서트’는 세계 20여 도시에서 1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약 70억~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는 VR이 단순한 체험형 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팬덤을 겨냥한 시장성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힘 입어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VR콘서트 사상 최초로 시즌2, 투모로우바이투게더 VR콘서트:하트어택’(TOMORROW X TOGETHER VR CONCERT : HEART ATTACK)을 선보인다.
그러나 VR의 미래를 콘서트 장르로만 한정하기는 이르다. 영화제와 극장은 VR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실험하고 관객에게 확장된 몰입 경험을 제공하며, 차세대 서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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