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금융당국 주문에 은행권 화답…'무늬만 개편' 넘을까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5.09.23 07:12  수정 2025.09.23 07:12

수익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변화

은행, 실질적 성과로 결과 증명해야

"영업 우선 관행 못 바꾸면 '공염불'"

은행권이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조직 개편과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금융당국이 연일 소비자 보호 강화를 주문하고 나서자 은행권이 조직 개편과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이런 변화가 보여주기식 개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소비자 권익 보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소비자보호 협의회를 열어 은행권 최초로 '금융사기예방 전담부서' 신설을 결정했다.


이는 기존에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던 금융사기 대응 업무를 한곳으로 모아 예방부터 사후 관리까지 일원화된 대응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주목할 점은 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임기를 최소 2년으로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단기 실적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비자 보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KB금융그룹도 이같은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KB금융은 지난 21일 새로운 '소비자보호 가치체계'를 정립하며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준수하는 소극적 대응을 넘어, 금융사가 적극적인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를 위해 AI 기반의 피해 분석 모델을 개발해 잠재적 위험을 예측한다는 방침이다. 또 기존의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과 이상거래 탐지시스템을 고도화해 금융사기 방어 능력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비대면 금융사고 발생 시 은행과 소비자 간의 책임분담 프로세스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은행권의 이 같은 변화는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에 대해 사실상 압박을 가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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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소비자 중심 금융을 강조하면서 "금융회사 내부 통제가 실효성있게 작동되도록 하고, 금융상품 과정을 꼼꼼히 점검해 보다 실질적이고 사전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역시 8개 금융지주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융 수요자를 경영의 중심에 두고 불완전판매 등 피해가 발생할 여지는 없는지, 무엇이 궁극적인 고객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영업의 전 과정과 내부통제를 꼼꼼하게 살피는 각고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 H지수 ELS 사태 등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와 내부통제 부실이 소비자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의식하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보다 책임 있는 자세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 개편과 시스템 도입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의 여부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보호 조직이 독립성과 권한을 가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 보호가 금융사의 수익 창출을 방해하는 경우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이번 은행권의 변화가 그동안 이어져온 영업 중심의 문화를 바꾸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이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조직이 영업 부서의 신상품 출시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실효성의 관건"이라며 "성과평가지표(KPI)의 관련 비중을 대폭 늘리는 등 영업 현장의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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