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권 교체기, 불확실성 커지는 이중압박
공명당 이탈로 자민당의 우경화 되레 가속화?
다카이치 낙마 시 '이시바 이후 공백' 현실화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달 30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과의 통상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일본까지 강경 보수 노선으로 기우는 조짐을 보이면서 외교 전선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정권 시절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한일 외교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의 등장으로 긴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향후 대일 외교의 향방이 주목된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일본 집권 자민당은 지난 4일 총재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을 새 총재로 선출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할 가능성이 크지만, 연정 붕괴로 내각 출범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의 중심축이 '강경 보수'로 이동하는 흐름 자체가 한일 관계에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자민당은 과거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자민당이 소수 여당에 불과한 데다가, 총리 지명 선거를 앞두고 확실한 우군이던 공명당까지 잃으면서 다카이치 총재는 불안정한 정치 기반에 놓였다.
일본 외신 등에 따르면 공명당의 연정 이탈은 일본 정치의 보수화 억제 장치가 사라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일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재는 출마 선언에서 '재팬 이즈 백'을 외치며 "일본의 국력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카이치 총재는 과거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여러 차례 참배한 인물이다. 이시바 총리 시절 유지되던 유화 기류가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조정기를 맞게 된 상황이다.
당초 다카이치 총재가 오는 17~19일 열리는 신사추계 예대제 기간에 맞춘 참배 보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연정을 이탈한 공명당이 다카이치 총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문제점을 지목해 왔던 만큼 실제 참배 여부가 일본 내 정치 지형 변화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불안정한 상황을 극복하고 다카이치 내각이 들어설 경우에는 위안부·강제동원·독도 등 민감한 현안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한일관계의 안정적 관리 기반이 흔들리면, 미국과의 통상 협상 교착으로 부담이 커진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전선에도 추가 압박이 될 수 있다.
현재로선 새 총리 지명 절차와 내각 구성은 불투명하지만, 일본의 강경 보수 노선이 현실화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추진해온 셔틀외교 복원 기류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시바 총리는 새 총리가 선출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이시바 총리는 최근 전후 80년을 맞아 개인 명의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전후 50년·60년·70년 총리 담화를 바탕으로 역사 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며 "지난 (제2차 세계) 대전(大戰)의 반성과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을 맹세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관용을 가진 본래의 자유주의, 건전하고 강인한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일본이 역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과거 직시 등 표현이 언급된 이시바 총리의 개인 메시지에 주목했다. 과거 역사를 직시하며 국가 간, 국민 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 협력에 바람직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후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에 오르든 그렇지 않든 한일 외교에는 적잖은 파장 역시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 선출에 실패한다면 이시바 이후 일본 정치가 정권 공백 상태로 빠져들거나, 야권 주도 내각이 출범하는 등 정국 혼란이 불가피하다.
입헌민주당·유신회·국민민주당의 중의원 의석을 합치면 210석으로, 자민당(196석)을 앞선다. 공명당이 자민당과 결별하면서, 주요 야당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정치 지형이 형성된 셈이다.
야권이 결집할 경우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신회(35석)와 국민민주당(28석)은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를 총리로 옹립하는 연정 구상을 꾀하고 있으나,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148석)과 다마키 대표 사이에 정치관의 간극이 상당해서 구상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일본의 향후 정치 구도는 어느 쪽으로 향하든 한일 관계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자민당이 여전히 일본 최대 의석 정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민당 총재인 다카이치 총재가 결국 차기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여전히 우세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 경우 다카이치 총재는 오는 20일이나 21일쯤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사상 최초의 여성 일본 총리로 취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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