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투자, 외환 유동성에 엄청난 부담"
"자동차 관세 인하 효과, 투자금액에 극히 일부"
"협상 너무 서둘러 '최악의 패' 일본 모델 수용"
"농산물 지킨다고 거액 합리화 어려워"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 후속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 정부의 협상 전략과 대규모 대미 투자 약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대미 협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내줄 수 밖에 없는 협상구도이지만, 과연 국익 관점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정 교수는 특히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막대하다고 경고하며 외환 유동성 위협과 더불어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은 3500억 달러 대비 미미하다고 비판했다.
3500억 달러 투자 약속, '맥시멈' 넘어선 외환 유동성 부담
한미 관세 협상의 최대 쟁점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 방식이다. 정 교수는 이 금액에 대해 "현실적으로 조달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신규 투자를 연간 500억 달러 정도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 이를 두 배로 늘려 4년간 이행하는 것은 기업들의 재원 조달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현금 조달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 정부가 거시 지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현금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대치는 200억 달러 정도"라고 분석했다.
이어 "3500억 달러라는 그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 될 수가 있을 것"이라며 "외환 유동성에 대한 부담이 결국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미국 금융기관 등에서 융자를 받을 때 한국무역보험공사나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융자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2000억~3,000억 달러 수준이 되려면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수반된다"고 꼬집었다.
불리한 협상 타이밍…'최악의 패' 일본 모델 수용
정 교수는 정부의 협상 속도와 전략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최소한 한 달 반 이상의 시간이 있었지만 막판까지 미룬 탓에 결국은 최악의 패를 잡은 일본 모델을 미국이 우리한테 수용하도록 강압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며 "협상 막바지에 가면 갈수록 한국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세 인하의 대가로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것이 국익적인 관점에서 좀 판단력이 좀 떨어진 거 아니냐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트럼프 관세를 윈윈으로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전략은 피해(부담) 최소화가 최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실익 없는 자동차 관세 인하 vs 농산물 방어
정 교수는 35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양보에도 불구하고 얻은 실익이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호 관세가 25%에서 15%로 10%포인트 낮아지는 경제 효과는 3500억 달러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당국이 농업 개방을 막았다는 성과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농산물 등 민감 분야를 막아낸 것을 자화자찬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한두 가지 민감분야를 지키기 위해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준의 현금 투자를 약속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통화스와프의 가능성 낮아…"일본과 비교하지 말아야"
협상의 난항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와 다른 무제한적이며 항구적인 통화 스와프이지만 이는 미국이 망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미 연준(Fed)이 협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 원화의 큰 변동성을 고려할 때 미 통화 당국이 원화를 안정적인 통화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준이 아닌 재무부와의 ‘원화 기반’ 통화 스왑 논의는 재원 규모와 대외신인도 측면에서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협상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일본과 비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과의 비교는 더 이상 하지 마라"라며 "일본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 10년간 우리보다 몇 배 많고 대미 투자를 위한 자금 동원 여력 역시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일본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보호주의 심화…"대미 의존도 낮춰야"
정 교수는 "미중 갈등과 함께 유럽연합(EU)까지 철강 관세 등의 보호주의 조치를 도입하면서 전 세계가 새로운 단계의 보호주의로 들어서고 있다"며 "이는 세계 무역의 악화를 넘어 대공황의 전조 증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며 "EU의 세이프가드 조치 등에 대해서는 중국이라든가 터키 등 EU에 대한 자동차·철강 수출이 많은 국가들과 적극 협조해서라도 대EU 통상 관리를 잘해야 되겠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끝으로 "이번 협상은 타결 시점보다 '내용 디테일'이 너무나 중요하게 돼버렸다"며 "미국도 우리나라와 통상분야 관리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므로 일정 부분 진전된 결과를 도출하는 쪽으로 입장이 모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아울러 "통상교섭본부는 미 USTR과의 신뢰 회복과 긴밀한 대화 채널 구축이 필요하다"며 "한미 동맹 구조 하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대미 통상 전략을 추구해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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