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자립의 한계…끝나지 않은 경고 [풀뿌리 30년 도전②]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10.29 10:02  수정 2025.10.29 10:02

22개 시·군은 연평균 인구감소율 ‘마이너스’

분권의 착시로 위기에 내몰린 지역들

생존의 딜레마…변화를 요구 목소리 높아져

전국 지방소멸위험지수 지도 변화 비교. ⓒ나무위키

한국 지방자치는 30년간 눈에 띄는 제도적 성장을 이뤘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는 지방 재정의 한계와 주민 체감 격차라는 심각한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재정 자립도의 저하와 중앙정부 예산 의존성, 그리고 제한적인 주민 참여 구조는 지방자치가 진정한 분권과 자치로 나아가기 위한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금, 주민들 삶에 실제 변화를 체감시키지 못한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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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의 환상, 재정의 벽에 가로막히다


지방분권 30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지역 간 자립 격차가 점점 더 뚜렷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5년 지방자치단체 재정통계에 따르면 평균 재정자립도는 48.6%이다.


그러나 전남·강원(27%), 경북(29%), 충남(31%) 등 농산어촌 권역은 30% 미만에 머물러 있다. 스스로 세입을 조달할 수 있는 실제 능력이 ‘미달’ 상태인 지자체가 전국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도 서울(79%), 경기(62%), 세종(56%) 등 수도권은 50% 이상으로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도 상당한 재정 운영이 가능하다.


2025년 자치단체 총예산 326조원 중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은 145조6000억원(44.7%), 이전수입(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은 150조9000억원(46.3%)으로 집계됐다.


많은 지자체가 ‘세입 절반 이상을 중앙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특히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자체 예산으로 필수 공공서비스(의료·교통·문화 등)조차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경남의 한 기초단체장은 “자립도 30%가 안 되면 대형 기반사업이나 인프라 확충은 엄두조차 못 낸다. 정부가 지정하는 현안사업, 재해·재난 사업 외엔 새 판을 짜기도 어렵다”며 “사실상 자율적 정책도, 지역 맞춤형 혁신도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행정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재정 불균형이 구조화되는 한 자치의 본질은 결국 외형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남들은 된다는 착시만 키우고, 농산어촌과 지방중소도시의 현실은 점점 더 취약해진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행안부도 최근 보고서에서 “재정불균형 심화는 지역의 자유로운 변화나 진정한 분권 실현을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핵심 원인”이라며 “재정 불균형 심화가 곧 지역의 자유로운 변화라는 분권의 취지를 약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봤다.


이처럼 분권의 외피 아래, 재정의 벽은 더 두꺼워지고 있다. 지역 스스로 살아갈 힘은 엷어지는 것이 30년 분권시대가 남긴 냉정한 통계와 현장 목소리인 셈이다.


전국 지역 재정자립도. 수도권을 제외하고 50% 미만 지역이 눈에 띈다. 이 중 전북, 전남, 강원은 30%도 되지 않는다. 각 지역의 군소 단위로 들어가면 재정자립도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데이터처
참여의 사각지대…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주민 참여 구호가 전국에 크게 울려 퍼진 지 30년이 지났다. 현실은 도시와 골목, 세대와 계층별로 참여의 기회와 실제 영향력이 달라진, 이른바 ‘양극화’만 심화됐다.


2025년 현재 전국적으로 주민자치회 참여 경험이 있는 주민은 14%에 불과하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은 대체로 인구와 예산, 사회자본이 풍부한 도시 중심의 일부 구(區)나 혁신적으로 운영되는 일부 읍·면 단위에 집중돼 있다.


반면 농촌, 고령화가 심한 지역, 소규모 시군에선 현실적으로 참여율이 극히 낮다. 주민총회나 예산편성 등에서도 ‘행사’ 이상의 체감 효과를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특히 청년층의 지방정책 이탈은 뚜렷하다. 고령화와 청년 유출이 겹친 농어촌, 도심의 저소득·소규모 주거지 등에선 ‘동네에 남는 건 어르신 회의 뿐’이라는 자조가 빈번하다.


참여제도 확대와 공모사업, 온라인 설문 등 여러 참여 수단이 도입됐어도 실제 생활시간과 구조적 장벽(회의시간·학력·정보·행정 접근성 등) 때문에 청년과 경제활동 인구가 위한 제도적 진입로는 좁다.


정책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것과, 그 기회를 실질적으로 이용한 결과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체감 사이엔 명확한 단절이 있다.


현장에선 “행정이 요구하는 절차형 참여에 머물 뿐, 진짜 마을 필요와 주민 의견은 정책 채택 단계에서 소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충남의 한 면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이 마을을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임기도 짧고, 예산 구조도 회장 개인정보·신용에 기대 운영되는 등 한계가 너무 크다”며 “예산과 권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짜 자치는 허상”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실질 참정과 생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 한, 제도적 분권은 골목의 현실 변화로 연결될 수 없다”며 “참여의 구조와 동력, 지원시스템 전부가 재설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방소멸은 지방자치 30년사에서 반드시 풀야할 숙제다. 대한민국 사회구조를 반영한 구조적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뚜렷해진 ‘빛과 그림자’


지방소멸 경고등은 한국 전역에 아로새겨지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무려 137곳(59.8%)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돼 있다.


이 중 다수는 전남, 경북, 충남, 강원 등 농산어촌과 소도시·산촌이다. 고령화로 인한 출산율 저하, 청년층의 도시 이탈, 지역 서비스 붕괴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경제·교육·문화·보건 등 지역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무너지는 ‘복합재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소멸위험지역의 70%는 1인 청년가구 증가와 초고령화, 학교·병원·상점 등 필수 서비스 붕괴, 교통·일자리 기반 약화로 ‘삼중고’에 빠져 있다.


실제 22개 시·군은 연평균 인구감소율이 -2%를 보이고 있다. 인구 2000명 미만 면(面) 지역도 전국 358곳이나 된다. 행정서비스의 직접 제공조차 벅찬 이 지역들처럼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소멸고위험지역’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수도권 외곽·군부·중소도시는 물론, 일부 광역시 낙후 구역과 혁신도시까지 신규 소멸위험지역으로 진입했다. 전남 고흥, 경북 군위·영양, 강원 인제·화천, 충남 청양·서천·부여 등은 소멸지수가 0.2 이하로 곧 ‘사망 직전’ 단계에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들 지역의 공동 특징은 청년 유출, 교육·고용 부재, 귀농·귀촌 정책 효과의 한계, 그리고 ‘매년 달라지는 각종 개발사업’에도 불구,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의 붕괴가 출구 없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와 각 지자체는 지방소멸기금 확대, 귀촌·청년 인구 유치, 관광·디지털산업 육성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지역·세대별 수요 미스매치와 행정 집행력 한계로 실질적 회복세가 잡히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소멸위험의 본질은 지역 재정과 일자리, 돌봄체계 등 실생활의 총체적 기반 부재에 있다”며 “도시 일극 체제에서 돌아가는 인구·산업 구조에 근본 변화가 없다면, 소멸위험지역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지금은 ‘분권’이라는 선언적 제도보다 지방의 실질적 생존전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때”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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