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조선중앙TV화면
김정은 새 진용이 짜졌다. 국무위원회, 당 정치국과 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내각 등에 김정은 ‘권력 집사’들이 자리를 배정받았다. 권력은 가지나, 김정은이 시키는 대로 수족처럼 집사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그 과정의 단상이다.
첫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규정된 일반·평등·직접적 원칙에 의한 비밀투표의 실상인 선거판을 김정은이 직접 주연으로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국민 주권이고, 자유롭고 공정한 투표권 행사가 기반이다. 지난 3월 15일 제15기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북한식 민주주의, 김정은이 주창하는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보고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한다는 ‘인민대중제일주의’의 현주소를 김정은이 적나라하게 연기했다.
조선중앙TV가 자랑스레 소개한 영상을 보면, 김정은이 인민에 대한 헌신의 각오를 가다듬듯 선거장 입구에서 잠시 감회에 젖는다, 선거장에 들어서자 관리원이 공손하게 바치는 투표권을 받아 쥔다, 좌우에 입구와 출구 문으로 뚫려진 투표실에 입장한다, 뭘 쓰거나 찍거나 없이 그냥 투표권을 함에 넣는다(선거법에 따라 찬성함과 반대함이 있어야 하는데 함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출구로 나와 선거장 입구에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연설한다. 투표실에는 동행한 집사, 김재룡·리일환·김덕훈·김여정 등이 들어가고 나온다.
정권 수립 초기에는 후보자 찬·반 여부를 찬성 투표함이나 반대 투표함에 넣는 것이었다. 1959년부터는 함을 하나로 하고, 관리원의 삼엄한 눈초리 아래 투표권을 찬성하면 그냥 투표함에 넣고, 반대하려면 후보자 이름에 볼펜으로 선을 긋고 넣어야 했다. 2023년 8월 선거법을 개정해 투표실 내에 다시 찬성과 반대 두 개 함을 두고, 원하는 곳에 투표하도록 했다. 투표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구역마다 이미 정해진 단일 후보자를 대상으로 찬반을 묻는 선거인데, 투표실에 뚫려진 문으로 누가 찬성 혹은 반대하는가를 훤하게 볼 수 있다.
김정은이 등장해 TV로 방영하는 선거장이라 그래도 김정은이 투표하고 나올 때까지 다음 사람이 투표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도한다.
이어 권력 집사 둘이 투표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보면, 일반의 통상 투표실에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찬성함에 표를 넣는 상황일 것임을 넉넉히 짐작하게 한다.
다음날 중앙선거위원회는 공보를 통해 “대의원선거는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법에 철저히 준하여 실시되었다”면서 687명이 승인(다른 후보를 이겨 뽑힌 것이 아니기에 당선이라 할 수는 없다)된 결과를 알렸다. 등록된 전체 선거자의 99.99%가 투표에 참가했다.
주민 자신이 선택해 뽑을 권리를 가진자란 ‘유권자’라 말할 수 없음을 북한 스스로 알기에 ‘선거자’로 표현한다. 타국에 있거나 먼 바다에 나가 투표하지 못한 선거자 0.0037%, 기권 0.00003%란다.
지난 3월 15일 순천지구 천성청년탄광 선거장에서 투표하는 김정은ⓒ조선중앙TV
놀랍다. 모두가 신체 건강해 아프지 않고, 교통이 불편한 구역 선거자들을 선거장에 진작 다 모아서 투표하도록 했는가 보다.
찬성투표한 선거자는 99.93%, 반대투표한 선거자는 0.07%다.
2023년 11월 28일 노동신문은 11월 26일 실시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도인민회의 후보자의 경우 찬성 99.91%와 반대 0.09%, 시·군인민회의 후보자에는 찬성 99.87%와 반대 0.13%란 결과를 1면 기사로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찬성 100%의 과거와 달리 김정은 체제는 반대표가 있는 민주주의라 선전하려 한 것이다.
반대표가 이번에 준 것을 보면,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주민들이 감읍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0.07%나 반대표를 던지는 용기가 정말로 대단하다.
의문이 인다. 누가 어떻게 투표하는지 사실상 공개된 상황에서, 후과가 분명히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과연 반대표가 실제 있었는가.
100%가 찬성했지만 북한 민주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이렇게 조작했는지, 아니면 더 많은 반대표가 있었음에도 김정은 체제가 감내할 수준이 이 정도여서 그렇게 발표했는지,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둘째, 김정은 집권 1등 공신이자 서열 2위였던 최룡해가 완전히 퇴장당해, 김일성 가계 외 명문가는 더 이상 없다. 김일성의 최측근으로서 수령체제 확립에 공헌했던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 최룡해의 실각은 진작 예견됐다.
지난해 4월 25일 김정은은 북한판 이지스함 ‘신형 다목적공격형 구축함’ 1호를 야심차게 선보였다.
이 함정에 김정은은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체질화한 군사 활동가의 전형이고 공화국 무력의 원로이며 백전로장인 항일혁명투사”라며 최현의 이름을 붙이고, 등급도 ‘최현급’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가문의 영광인 진수식에서, 함정에 아버지 얼굴상을 부착하고 김정은이 직접 예를 표하는 행사에서 정작 그 아들 최룡해는 초대되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최룡해에 대한 김정은의 배려일지 아니면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박태성 내각 총리,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재룡 당 규율조사부장, 노광철 국방상 등)이 대거 당·군·정의 핵심 보직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퇴진 선물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고 썼다.(뉴스퀘스트, 2025년 4월28일) 2인자 최룡해는 사라지고, 나머지는 모두 정치국 위원(박태성·김재룡은 상무위원)으로 건재하다.
최룡해 장남 최준, 차남 최성(김여정의 남편이란 설도 있다)은 당 중앙위 후보위원에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셋째, ‘3미터 집사’ 조용원의 세상이다. 김정은 곁에 누가 서냐를 두고 김덕훈과 경쟁했던 조용원, 2024년 12월 김덕훈이 내각 총리에서 하차한 후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그야말로 각종 수발을 들고 있다.
최고 존엄과 입김을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선중앙TV를 유심히 보면 김정은과 3미터 거리 안에서 움직인다. 그 밖은 현송월 차지다.
김정은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생생하고 확실한 행동이 김정은을 우러러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박수 치는 일이다. 조용원의 특기가 존경과 존숭의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고 열렬하게 손바닥을 마주치는 것이다. 각진 어색한 표정의 김덕훈과는 다르다.
살살이 집사 조용원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되었으니, 최고인민회의가 어떤 역할인지 명약관화다. 조용원에게 남은 일은 내각 총리 박태성이 받은 차 번호 ‘7.27.0002’를 뺏어오느냐 여부다.
넷째, 김정은 우상화가 다져졌다. 2016년 옥상옥으로 만들어 입법·사법·행정부를 산하로 거느린, “국가주권의 최고정책적지도기관”인 ‘국무위원회’ 구성이 실증한다.
모두 당 정치국 상무위원·위원·후보위원인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이 제1부위원장, 내각 총리 박태성이 부위원장이고, 당 조직지도부장, 당 중앙검사위원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국제부장, 당 선전선동부장, 외무상, 국방상, 내각 제1부총리, 국가정보국장, 사회안전상, 최고검찰소장이 위원이다. 모두 김정은 사람이고, 김정은이 당연히 위원장이다.
지금의 김정은은 지구상 누구보다도, 핵무기까지 손에 쥐었으니 가장 강력한 1인 독재자다. 견제나 비판 조직·세력이 아예 없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부끄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참여해 ‘어리둥절’하게 하더니, 올해 이재명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될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한다.
ⓒ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