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의 새로운 캐스팅이 발표됐을 당시, 관객들 사이에선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굵직한 베테랑 배우들이 거쳐간 주인공 라이토와 엘(L) 역에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막 한 달이 지난 지금, 배우 조형균은 그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무대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조형균이 연기하는 ‘라이토’는 그가 왜 동료 배우들과 관객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는지 증명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그는 ‘데스노트’라는 강력한 원작과 음악의 힘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치밀한 해석을 더했다.
그의 라이토는 단순히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학생이 아니라,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오만’에 잠식당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양면성을 특유의 정확한 발성과 톤 조절을 통해 무대 위에서 입체적으로 구현해낸다. 한 음 한 음 눌러 담는 그의 가창은 라이토의 뒤틀린 신념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러한 저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07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18년 가까이 소극장과 대극장을 넘나들며 극과 극의 캐릭터를 소화해왔다.
낭만주의자 검객이었던 ‘시라노’는 그에게 2020년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악마 ‘더 데빌’의 X-White 역으로는 2019년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하데스타운’의 순수한 오르페우스,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록커, ‘호프’의 원고 K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도전’과 ‘증명’의 역사였다.
조형균의 진가는 무대를 대하는 그의 철학에서 더욱 빛난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 당시 “톤과 발성에 관한 연구를 집착 수준으로 한다”고 말할 정도로 캐릭터 분석에 몰두하는 배우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서 모습을 달리하며 온전히 ‘캐릭터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그의 집착 수준의 연기 철학 덕분이다.
물론 그에게도 고민의 시간도 있었다. 많은 작품을 거치면서 스스로 ‘발전’이 없다고 여기며 번아웃을 겪던 그가 내린 결론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데 집중하는 것’, 그리고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기복 없는 연기력, 어떤 역할이든 ‘조형균화’ 시키는 해석력, 그리고 동료들과의 완벽한 앙상블로 이어졌다.
‘데스노트’로 또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조형균은 쉴 틈 없이 다음 도전을 준비한다. 내달 11일 개막하는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에서 전설적인 범죄자 클라이드 역으로 또 다른 변신을 예고했다. 우려마저 환호로 바꾼 배우인 만큼, 조형균의 무대에 대한 존중과 집요한 노력이 계속되는 한 그의 무대만큼은 ‘믿고 보는’ 선택지로서 그 가치를 증명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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