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의 이야기㉚] 인천 화수동 책방 모도
조용한 골목길에 위치한, 작지만 따뜻한 서점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책방 모도
◆ 막연한 목표가 현실로…인천 화수동에서 시작한 꿈
인천 화수동의 골목길에는 8년째 동네의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작지만, 따뜻한 책방이 하나 있다. 하늘색 건물의 조금 오래됐지만, 그래서 정감 가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8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책들이 들어찬 서가와 작은 테이블이 독자들을 반긴다.
2018년 문서희 대표가 문을 열기 이전엔 담배 가게 겸 가정집이었던 이곳을 ‘그대로’ 살려 책방 모도만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문 대표는 “하늘색 외관을 보고 우리가 새롭게 칠한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보고 너무 예뻐서 그대로 살렸다. 천장에 달린 조명도 그렇고, 방을 사무실로 꾸몄을 뿐 주택의 감성을 그대로 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서점의 위치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도는 문 대표가 하나 하나 선택하고 또 직접 채워 더 소중한 책방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친구들이 직장을 찾아 서울로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도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일을 하며 돌파구를 찾아나갔지만, 결국 이직이 필요해진 시점 ‘그렇다면 내가 직접 일자리를 개척하자’는 마음으로 서점을 열었다.
헌책방 골목을 비롯해 화수동 ‘약속의 장소’로 꼽히던 대한서림까지. 책하면, 화수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 문 대표는 2018년 마침 매물로 나온 마음에 쏙 드는 주택을 발견, 자연스럽게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연히 만난 건물이지만, 문 대표는 “단독주택을 개조하다 보니까 외관 자체에서 특별함을 느껴주시기도 한다. 화수동 자체가 옛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는 손님들도 있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물론 “처음 3년은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할 만큼,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친구들도, 공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사람들도 ‘이곳에 서점은 안 된다’며 말렸지만, ‘모 아니면 도’라는 각오로 모도를 열었다.
ⓒ책방 모도
처음엔 문 대표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오지 않으면 찾아가겠다’는 각오로 독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고, 이에 자연스럽게 돌파구가 열렸다. ‘비밀 책’을 독자들에게 배송하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통해 호응을 끌어내는가 하면, 주변의 도서관, 학교를 부지런히 찾아가 눈도장을 찍으며 도서 납품을 하기도 했다. 바다 근처 동네라는 이점을 활용, 물때가 표기된 달력을 매년 만들어 동네사람들이 서점에 자연스럽게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이디어를 내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은 책에 관심 있는 주민들이 꾸준히 서점을 찾고, 또 주문하고, 입소문을 타고 외부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등 활발한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물 한 잔 마시러 서점에 들르거나 비가 오면 서점에서 비를 피하라고 권하는 등 마을의 편안한 공간으로도 자리잡았다.
◆ 책방 모도, 꾸준히 이어나갈 가능성
특별한 프로젝트를 통해 책방 모도만의 개성도 보여주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꼭 서점 안에서만 책을 판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낀 문 대표는 여러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화수동 곳곳을 직접 소개하며 책을 ‘새롭게’ 즐기는 경험도 선사했다. 이에 인천관광공사의 제안으로 정식 ‘문학 탐방’ 분야를 담당, 미술과 건축 등 타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도슨트 투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로 인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받은 한 손님이, 타 지역의 서점에서 ‘선결제’로 청소년에게 책을 선물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를 접한 뒤 책방 모도에서 선결제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고, 그 결과 손님의 후원금 15만원으로 10명의 청소년에게 책을 1권씩 선물하게 됐다.
이후 2호, 3호 후원자까지 나타나고 책을 선물받은 청소년들은 방명록에 직접 편지를 남기며 감사의 뜻을 표하는 등 인천 지역의 어른과 청소년들의 ‘연결’을 도왔다.
ⓒ책방 모도
책방 모도를 채운 2000여권의 책도, 또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키워나가는 모도의 가능성도 손님들과 함께 채우고 있다”며 문 대표는 감사를 표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성소수자를 위한 퀴어 도서 등 “누가 와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 대표의 소신을 바탕으로, 그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손님들의 추천이 더해져 모도의 큐레이션도 풍성해졌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여기에 손님의 제안으로 시작돼 이어지는 프로젝트까지. 문 대표는 책방 모도에 꾸준한 관심, 응원을 보내주는 손님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청소년 책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저는 사실 한 게 없다”고 말한 문 대표는 “저는 서점에 있었을 뿐인데, 제안을 해주신 분도 또 이어서 참여해주신 분들도 다 손님들이다. 무슨 복인가 싶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시절 모도를 찾은 후 성인이 돼 서점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한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문 대표는 “처음엔 몰랐는데,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더라. 그런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들이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도가 화수동에서 꾸준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재개발을 앞둔 만큼 먼 미래에 대해선 열어두고 있지만, 어디서라도 모도만의 감성이 이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제가 동경했던 동인천의 서점들이 있다. 저도 오래 서점을 유지하며 꾸준히 찾아갈 수 있는 서점이 되고 싶다. 이 자리에서 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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