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터널’ 속에 갇혀버린 중국 경제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11.16 07:07  수정 2025.11.16 07:07

中 PPI, 2022년 10월부터 37개월째 마이너스에 머물러

中 경제 최대 버팀목 수출도 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추락

美와의 ‘관세전쟁’ 후폭풍…지난달 對美 수출 25% 급감

AI 등 첨단 산업에 140조원대 퍼붓지만 경제회복 불투명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경제가 캄캄한 ‘암흑 터널’ 속에 갇혀버린 형국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 테크(기술) 산업에 돈을 퍼붓고 있지만, 중국 경제의 최대 버팀목인 수출이 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고꾸라진 데다 수렁에 빠진 부동산 시장도 도무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수십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내수도 깨어날 조짐마저 없는 탓이다.


중국의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가 2.1% 하락하는 등 중국 PPI는 2022년 10월부터 무려 37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9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10월 P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하락했다. 이로써 중국 PPI는 2022년 10월부터 37개월째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다만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0.2% 상승해 안도하고 있지만, 이것도 연중 최대 연휴인 국경절 효과가 크게 작용한 만큼 실속은 별로 없는 편이다. 미국과 벌이는 ‘관세전쟁’ 영향을 받는 일부 생활용품 및 서비스가 지난달 CPI 상승을 주도했지만 중국인의 ‘최애’(最愛) 먹거리인 돼지고기(-16.0%)를 비롯해 달걀(-11.6%), 축산류(-7.4%), 채소(-7.3%), 과일(-2.0%), 곡물(-0.7%) 등 필수 식품은 일제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CPI 상승률은 2023년 2월 이후 0%대 안팎에서 횡보하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의 물가 하락세가 공식 통계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 블룸버그통신이 중국 36개 주요 도시의 70개 품목 가격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일상 소비재부터 자동차·부동산까지 전반적인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며 '디플레이션 스파이럴‘(Deflationary Spiral·디플레이션 악순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일 중국 상하이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 AFP/연합뉴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중국 내 주요 품목 67개 가운데 51개의 가격이 하락했다. 주택가격은 27%, 비야디(比亞迪·BYD) 전기자동차는 27%, 창청(長城) 레드와인은 29% 곤두박질쳤다. 달걀과 쇠고기, 감자 등 식품 가격도 14~17% 떨어졌으며 전자레인지·가전제품·의류 등 생활필수품 가격 역시 동반 하락했다. 공식 CPI가 0% 부근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훨씬 뚜렷한 가격하락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격하락은 산업 전반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블룸버그가 6000개 상장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 비율은 5년전 19%에서 지난해 34%로 급증했다. 민간 기업의 급여 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이며 제조·정보기술(IT) 산업에서는 임금이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다.


중국 민간 조사업체 루이팅거우(瑞霆狗·RatingDog)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이 이달 3일 발표한 중국의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6을 기록했다. 지난 9월 51.2보다 0.6포인트 하락했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이 각각 집계한 이코노미스트 전망치 중간값 50.9와 50.7을 소폭 밑도는 수준이다. 기업 구매담당자 대상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PMI는 관련 분야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기준선인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 국면을 의미한다.


루이팅거우 지수는 중국 금융정보 제공업체 차이신(財新)이 S&P글로벌과 발표해 ‘차이신 PMI’로도 불린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PMI보다 민간·수출지향 기업과 중소기업의 경기동향을 비교적 더 잘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달 31일 발표한 국가통계국의 제조업 PMI는 10월에 9월(49.8)보다 0.8포인트 하락한 49.0으로 집계돼 제조업 업황이 7개월째 위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11일 중국 베이징의 정육점에서 한 시민이 돼지고기를 구입하고 있다. ⓒ AP/뉴시스

이런 판국에 중국의 수출 증가율도 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늘어났던 수출 물량에 따른 기저효과와 함께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커졌던 불확실성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해관총서는 중국의 지난달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수출 증가율(8.3%)은 물론 로이터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3%)도 크게 밑돈 수준으로 올 들어 가장 저조하다.


수출 증가율의 역성장은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한 기업들이 양국 간 무역갈등을 예상해 중국산 물품 선취매(先取買)에 나선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중국 수출은 전년보다 12.7%나 급증했다. 여기에다 지난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산된 불확실성이 중국 수출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의 지난달 수출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미 수출이 크게 줄었다. 올 10월 중국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나 급감했다. 7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율이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EU)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으로 수출이 증가했지만 미국의 큰 공백을 메우지 못한 셈이다. 중국의 10월 수입은 부진한 내수 탓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9월 수입 증가율(7.4%)과 로이터의 시장 전망치(3.2%)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0월 무역흑자는 900억 7000만 달러(약 132조원)로 전달 흑자 904억 5000만 달러와 로이터의 전망치 956억 달러를 밑돌았다. 중국은 올들어 미국과 초고율 관세부과를 주고받고 첨단 반도체와 희토류 수출 통제 등으로 맞서면서 극심한 무역갈등을 빚어 왔다. 미·중 양국 고위급이 5차례 무역협상을 벌여 ‘봉합’ 수준의 휴전을 지속하다 지난달 말 한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의 갈등은 임계점을 향해 치달았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두 나라는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확전을 자제하고 상대방을 향해 내렸던 조치를 유예하는데 합의하긴 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천하오웨이(陳浩偉) 싱가포르 대화(大華)은행(UO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정상회담 합의 덕분에 단기적으로 안정세를 나타낼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상호 간 의존도를 낮출 것으로 관측돼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AI 분야 등에서 ‘기술 굴기’를 과시하고 있지만 경제 회복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비관적 시각을 견지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중국의 AI 부문 자본지출이 6000억~7000억 위안(약 123조~14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기술 자립도와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선 고정자산 투자가 줄어들고 소매판매 증가율이 둔화해 내수 위축이 장기화하고 있다.


중국 자오상(招商)은행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객 소비가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고 있고, 중국 상위 30개 기업 중 25곳이 가격 전쟁에 휘말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중국은 인구와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어 향후 주택 수요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와 소득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주택 구매자 심리가 살아나는 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도 “올해 부동산 매매가 8% 감소하고 내년에도 최소 6%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중국 70대 도시의 공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9월 신규주택 가격평균은 전달보다 2.7% 떨어졌다. 8월(2.1%)보다 하락 폭이 커졌다. 중고주택은 올 들어 최대 20% 급락했다. 미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은 중국 정부가 첨단기술에 쏟는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도 안 되기 때문에 쪼그라들고 있는 부동산 부문을 대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

더욱이 내수 활성화를 주도해야 할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도 바닥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 부채와 그림자 부채(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채)를 합친 총부채 잔액은 92조 6000억 위안에 달한다. 지난 4년 새 두 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정치 목적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입된 지방정부 부채가 자금시장 충격에 취약하다고 경고한다.


실제 지방정부는 줄어든 토지 매각수입에 부진한 세수로 재정압박을 받자 의료와 사회복지, 인프라 투자에 손을 놓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가 내수 진작을 내세워도 실질적 개선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수 부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따라 중국 내부 문제를 넘어 글로벌 경제 전반에 심각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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