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이 된 불법 – 군적 수포제 [정명섭의 실록 읽기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17 14:01  수정 2026.03.17 14:01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온갖 수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뉴스에 종종 등장한다. 일부러 살을 찌우거나 빼거나, 심지어 고의로 몸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손가락질한다. 병역을 기피하려는 몸부림은 현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오히려, 조선시대가 더 처절하고 치열했다. 조선시대 병역 관련 시스템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엄격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만 해도 양인 남자는 누구나 군역의 의무를 져야 했다. 16세가 되면 군적에 이름을 올리고 60세가 될 때까지 군역을 수행했다. 물론 44년 동안 군대에 있는 건 아니고 일년에 몇 달씩 차출되는 식이었다. 번상이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당사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일단 복무할 장소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먹고 자는 비용 모두 자비 부담이었다. 거기다 만약 농번기 때 차출된다면 농사를 망치게 될 수도 있었다. 거기다 군대에 있으면서 다치거나 죽으면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했다. 물론 조정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세 명씩 조를 짜서 한 명이 군대에 있는 동안 두 명이 군대에 간 사람의 가족을 돌봐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정군과 보인이라고 불린 이 제도의 도입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여전히 군역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의무였다.


조선군이 착용한 두정갑 ⓒ직접 촬영

15세기를 지나가면서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일단 세금이 늘어나면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졌고, 사회지도층인 사대부들이 온갖 핑계를 대고 군역을 피한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군역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방군수포제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군역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베를 비롯한 재물을 받아서 그걸로 한양의 유민이나 노비를 대신 고용한 것이다. 조정에서는 아주 일부의 예외적인 사유만 돈을 내고 군역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너도 나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편리한 제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백성들은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고, 관리들은 중간에 착복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대신 군역을 서는 한양의 빈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한양에서만 자행되던 방군수포제는 차츰 지방까지 퍼졌다. 조정에서는 예외적으로만 인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격하게 조사를 해서 적발해서 처벌했다. 하지만 중종 36년, 서기 1541년 즈음에 군적수포제라는 이름으로 합법화시킨다. 줄여서 군포제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정군과 보인 가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군포라는 이름으로 베를 걷어서 그 돈으로 병사들을 고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대에 비유하지만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뀐 것인데 문제는 그 과정이 불법이었다가 합법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백성들은 일년에 몇 달씩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서 복무하지 않아도 되었다. 군역을 수행하던 도중 다치거나 죽을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결말은 없었다.


애초부터 군포제는 문제가 많은 제도였다. 군포를 걷기 위해서는 대상자를 지정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군적에 올라야 할 대상자를 지정해야 군포를 거둘 수 있는데 이 지점부터 부정부패가 발생한 것이다. 사대부를 비롯해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포를 내지 않고 빠져나갔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의 교육기관인 향교의 학생으로 등록하는 것인데 여기에 올라가면 원칙적으로 군역이 면제였다. 지금도 대학원 졸업 때까지 군대를 미룰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다만, 이때는 평생 가능하다는 점이 달랐다. 이렇게 비워진 부분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부정부패에 눈을 뜬 관리들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미 죽은 사람과 아직 16살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도 대상자로 집어넣고 군포를 거둔 것이다. 각각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 외에도 세금을 내지 못하고 도망친 이웃 주민의 몫까지 거두는 방식도 있었다. 힘 없는 백성들은 죽은 가족이나 도망간 이웃의 군포까지 대신 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군포를 낼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도망을 갔고, 그러면 남은 사람들이 그 몫까지 떠안았다.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농촌은 텅 비어갔고, 국가의 군사력은 급격히 약화 되었다. 조정에서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양반들과 권력자들의 반대가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편법을 사용한 조선은 차츰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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