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서민금융의 문을 닫은 건전성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1.15 08:08  수정 2025.11.15 08:14

가계대출 규제, '건전성' 이름으로 서민금융 문 닫는 현상 심화

제2금융권까지 고신용자 쏠림 심화되며 금융 양극화 가속화

규제 재설계 통해 안정성과 포용성 균형 되찾는 게 핵심 해법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가계대출 규제는 한때 한국 경제의 '안정판'이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각종 규제를 강화했고, 금융기관은 리스크관리라는 명분 아래 고신용자 중심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의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신용자 대출 비중은 급증하고 저신용자와 서민층의 금융 접근성은 후퇴하고 있다. 안정적 건전성 관리가 결과적으로 '서민금융의 문'을 좁히는 역설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 수치를 보면 이 변화는 명확하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2020년 전체 가계대출 중 KCB 신용점수 951점 이상 초고신용자 비중은 12.6%에 불과했지만, 2025년 현재 40%를 넘어섰다.


반면 800점 이하 중저신용자 비중은 20%에서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일시적으로 제2금융권에 자금이 몰렸지만, 이제는 상호금융조합·보험사·카드사 등 대부분 기관이 고신용자 중심 구조로 선회 중이다.


이 같은 구조 변화의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금융당국의 지속적 규제 강화와 감독평가 기준이 '건전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점이다. 대출 증가율 목표, 부실률 관리, 위험가중자산 등 모든 항목이 '불량채권 억제'에 집중된 결과 기관들은 고신용자 선호를 구조적으로 내재화했다.


둘째, 최고금리 인하 정책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이다. 고금리 대출이 축소되면 금융기관은 리스크 대비 수익이 맞지 않는 중저신용 대출을 기피하게 된다.


셋째, 경기둔화와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다. 경기 민감도가 높은 계층의 상환능력이 악화되자, 내부 리스크 모형상 이들의 대출 한도가 자동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변화가 '정책금융의 취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새마을금고·신협·농협 등 상호금융기관은 지역 기반 서민금융의 보완지대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이들 기관마저 고신용자 중심으로 쏠리면, 금융 사각지대가 급격히 확대된다. 중저신용자와 자영업자는 은행권에서 밀려나고, 이제는 2금융에서도 밀려나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


신용구조의 양극화와 더불어, 경제적 취약계층의 소비 위축, 지역 소상공인 자금난, 비제도권 금융 확산 등이 뒤따른다.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중저신용자 보증부 상품의 공급 확대, 상호금융권의 대출한도 규제 완화, 서민금융진흥원의 정책금융 채널 다변화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저신용자 전용 보증 대출 확대, 정책 서민 대출의 비율 상향을 통해 금융사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금융사들이 단독으로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 공공과 분담하는 구조로 바뀌면,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취약계층의 자금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로써, 보증기관의 재무건전성을 위한 충분한 자본확충과 리스크관리 강화도 필요하다.


또한, 금융당국은 차주 단위 DSR 규제의 조정 가능성도 고려된다. 신용등급별·소득구간별로 탄력적 규제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조정이 필요하다. 이른바 '맞춤형 DSR'로, 일률적 규제 대신 신용도·소득 흐름·부채구조를 종합 평가해 신용이 낮더라도 상환여력이 있는 차주에게는 일정 수준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현행 규제가 과도하게 ‘평균적 안전성’에 매몰되어 있다면, 앞으로는 ‘개별적 상환능력 평가’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보완이 성공한다면 기대되는 효과는 단순히 '대출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 접근성의 개선은 소비와 내수 회복에 직결되며, 금융사 입장에서도 리스크 분산 효과를 제공한다. 장기적으로는 서민층의 금융 이력 축적과 신용등급 개선으로 이어져 건전한 포용금융 생태계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재설계'다. 리스크관리는 유지하되, 그 통제의 초점이 특정 그룹(고신용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다.


안정성과 포용성은 병립할 수 있다. 해당 균형점을 찾기 위한 정책조정과 금융권의 자율적 혁신이 맞물릴 때, 한국의 가계 금융은 비로소 '건전한 포용성'을 회복할 것이다.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 / rmjis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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