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부부 정아(공효진 분)와 현수(김동욱 분)는 윗집 부부의 활발한 성생활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친다. 각방을 쓰며 관계의 온기가 사라진 두 사람은 이미 지쳐 있는 상태다.
그런 어느 날, 아랫집 정아가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아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윗집 부부 김선생(하정우 분)과 수경(이하늬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수경은 유명한 유튜버이자 정신과 전문의다. 정아는 수경의 유튜브 콘텐츠들을 보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 받았기에 윗집 부부와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소음의 피해자인 현수는 이 만남이 달갑지 않아 ‘1시간 안에 저녁식사를 끝내자’는 조건을 걸고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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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부부는 성격도, 성향도, 관계의 온도도 극명하게 다르다.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는 점점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성적 취향까지 드러나는 순간 윗집 부부가 아랫집 부부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건네면서 이 저녁 식사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영화는 ‘동거인’,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매치 포인트’라는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단 하나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짧은 저녁 시간을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흔들며 그려낸다.
전작 ‘로비’가 많은 인물과 대사량으로 흩어졌다면, ‘윗집 사람들’은 네 명의 인물만으로 대사를 압축해 밀도를 높였다. 문어체에 가까운 길고 정제된 대사들은 배우들의 호흡과 리듬에 따라 살아나는데, 이를 고려한 전체 자막 삽입은 이번 작품에서 하정우가 시도한 가장 전략적인 연출적 선택이다.
반면 가장 강하게 시선을 끄는 인물은 윗집 수경을 연기한 이하늬다. 지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품은 그는 이 밤의 흐름을 교묘하게 이끌어가는 ‘설계자’ 같은 존재로, 대화의 방향과 온도를 미묘하게 조절하며 장면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이 기묘한 세계관은 초반부터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관객이 진입할 창구 역할을 맡은 이는 정아 역을 맡은 공효진이다. 그의 시선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지가 영화 전체의 경험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메가폰을 잡은 하정우는 야한 장면 하나 없이 19금 대사만으로 분위기와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빠른 대사 템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장난과 은유, 말맛으로 밀어붙이는 리듬이 이번 작품에서도 살아 있다.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이 밤의 저녁 식탁이 향해온 지점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네 사람의 불안과 결핍, 소통의 부재,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며, 결국 관계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에 도달한다. 하정우가 이번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파격적인 부부들의 성생활이 아닌, 소통의 중요성과 외면해온 감정의 바닥을 봐야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관계의 조건이다.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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