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은 이미 달리는데…제약·바이오, AI 도입이 생존 가른다"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5.12.04 14:17  수정 2025.12.04 14:24

AI 신약 시장 2030년 13조원 성장 전망

中 수직 계열화, 美 플랫폼 구축에 집중

韓 데이터 확보 및 자동화 인프라 구축 과제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이 4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에서 열린 한국 바이오 경제 전망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인공지능(AI) 도입으로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가 변화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선제적으로 시장 선점에 나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바이오 파운드리 구축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바이오협회는 4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에서 ‘한국 바이오 경제 전망 세미나’를 열고 AI 도입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바이오 산업 전반에 대해 조망했다.


AI 도입의 가장 큰 이점은 경제성에 있다. AI 도입 이전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10~15년의 시간과 2~3조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그러나 AI 도입 이후 개발 기간은 6~9년, 비용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3년 약 2조1900억원에서 2030년 약 13조44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9.6%에 이른다.


이날 발표를 맡은 박상훈 삼정KPMG 파트너는 “글로벌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67%가 1~2년 내 AI를 바탕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며 “기업들의 투자가 AI로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바이오 경제 전망 세미나 현장 ⓒ한국바이오협회

이처럼 AI가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윤희정 한국과학기획기술평가원 팀장은 중국이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수직 통합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팀장은 “중국은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와 AI 신약 기업 바이오맵을 양축으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시가 하드웨어 부분인 생산·공정을, 바이오맵이 소프트웨어 부분인 AI 설계를 맡아 기획부터 생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구조다.


반면 미국은 빅테크 기업들이 ‘플랫폼 인프라’를 선점하는 구조다. 윤 팀장은 “엔비디아는 ‘바이오니모’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100개 이상의 글로벌 바이오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며 “구글 역시 딥마인드의 ‘알파폴드’에 이어 AI를 공동 연구자로 활용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등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파마 또한 신약 개발에 AI를 선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소재 제약사인 사노피는 2018년 에일리 랩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2023년 연구개발, 임상시험, 제조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반 의사결정 앱인 ‘플라이’를 선보였다.


화이자의 경우 팬데믹 시기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IBM의 슈퍼컴퓨팅과 AI를 사용해 4개월 만에 약물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와 자동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봉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AI와 로봇을 접목해 실험을 자동화하는 ‘바이오 파운드리’ 구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성 박사는 “대장균 유전자 4300개 중 10개만 조합해도 경우의 수가 10의 36승에 달해 슈퍼컴퓨터로도 계산에 10년이 걸린다”며 “기존 수작업 실험으로는 데이터 확보에 한계가 있는 만큼 반도체 파운드리처럼 표준화·자동화된 공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박성훈 파트너는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인 만큼 AI 투자를 통해 회복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며 “이것이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고 바이오 산업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 사격도 예고됐다. 윤희정 팀장은 “정부 차원에서 ‘AI 바이오 의료 연구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고품질 데이터 인프라 확보와 더불어 바이오와 AI를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한국형 AI 신약 개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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