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템’ 장착한 아프리카 농업의 비상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12.12 09:04  수정 2025.12.12 09:04

코피아가 남긴 아프리카 농업 성적표

중앙아프리카까지 진출…K-농업 클래스 입증

검증된 코피아가 여는 미래 10년의 농업협력

아프리카에 한국 농업기술이 호평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숙원 사업인 식량난의 해법을 대한민국이 제시한 것이다. 한국 농업기술을 장착한 아프리카는 농업에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아프리카 농업 한복판에 한국 농업기술의 거점이 또 하나 세워졌다. 중앙아프리카 최초 코피아(KOPIA) 카메룬 센터가 공식 개소한 것이다.


카메룬 센터 개소로 한국의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네트워크는 동·서·남·중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입체적 구조를 갖추게 됐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확량과 농가 소득을 끌어올린 코피아 모델이 중앙아프리카로 확장되면서, 한-아프리카 농업협력의 지형도 역시 새로 그려지고 있다.


아프리카 한가운데에 꽂은 한국 농업기술 깃발


코피아 카메룬 센터는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설치된 첫 한국형 농업기술 거점이다. 카메룬 정부가 먼저 센터 유치를 요청했다. 이후 정상외교와 장관급 협의를 거쳐 2025년 수도 야운데에 문을 열었다.


이는 ‘수원국 주도형+정상외교 연계형’ 농업협력 모델로 평가된다. 단순한 프로젝트 공여가 아니라, 국가 전략과 외교 채널을 통해 설계된 중장기 플랫폼이라는 점이 기존 개발협력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센터의 핵심 역할은 고수확 벼·곡물 종자를 연구·증식해 소농에게 보급하는 ‘종자 허브’다. 카메룬 서부 쿠타바 일대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지 토양과 기후에 맞는 벼 품종을 시험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는 수십헥타르(h) 규모에서 인증 종자 생산과 보급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카메룬 수도 야운데 농업농촌개발부 안에 마련된 코피아 카메룬 센터 개소식에서 곽도연 식량과학원장(왼쪽)과 가브리엘 음바이로베 농업부 장관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카메룬 센터 개소로 코피아는 중앙아프리카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카메룬 정부는 이 거점을 활용해 자국 내 쌀 생산성 향상은 물론, 중부아프리카 인접국으로 종자와 기술을 확산하는 ‘중앙아프리카 종자 공급 기지’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카메룬 센터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K-라이스벨트(K-Ricebelt)’ 구상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K-라이스벨트는 가나·세네갈·케냐·우간다·카메룬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한국형 벼 품종과 재배기술을 보급해, 중장기적으로 수천 톤 단위 쌀 증산을 목표로 하는 전략 사업이다.


카메룬 센터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K-라이스벨트(K-Ricebelt)’ 구상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K-라이스벨트는 케냐, 우간다, 세네갈, 가나, 카메룬, 감비아, 기니 등 아프리카 7개국에서 한국형 벼 품종과 재배기술을 보급해, 중장기적으로 수천 톤 단위 쌀 증산을 목표로 하는 전략 사업이다.


국가별로 시범재배 면적과 목표 생산량이 제시된 가운데, 카메룬은 이 벨트의 중앙아프리카 시험장 겸 확산 거점으로 자리 잡는다.


카메룬은 쌀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온 국가다. 고수확 벼 종자와 재배기술 확산으로 자국 생산을 늘릴 경우, 식량수입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농촌 일자리와 소농 소득을 함께 끌어올릴 여지가 크다.


여기에 코코아·커피·옥수수·카사바 등 다양한 작물과 중부아프리카 물류·경제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더해지면서, 카메룬 센터는 벼를 넘어 옥수수·축산·산림 복원으로까지 협력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농업 현대화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곽도연 원장과 음바이로베 장관이 코피아 카메룬 센터 개소식 전 현안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벼·씨감자·옥수수…‘실험’이라 부르기엔 선명한 결과들


카메룬 이전의 아프리카 코피아 센터들은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작목에서 수확량과 소득을 바꿔온 성과를 쌓아 왔다. 카메룬 센터가 출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도, 이미 케냐·세네갈·짐바브웨 등에서 검증된 모델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동·서·남부 센터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코피아 유치를 두고 경쟁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동아프리카 케냐 센터는 가금과 씨감자 협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백신 접종과 사료 배합 개선, 무병 씨감자 보급을 통해 참여 농가의 소득이 1.3~2배 수준까지 늘어난 사례가 보고돼 있다. 학교 유휴지를 활용한 ‘스쿨팜’ 조성을 통해 학생 급식과 영양 개선, 농업 교육 효과를 동시에 거둔 점도 의미 있게 평가된다.


우간다에서는 관개 시설과 물 관리 기술 개선을 통해 일부 과수 농가에서 가뭄 속에서도 기존 대비 2.7배 수확, 3배 안팎의 수익 증가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기후위기 시대 소농의 ‘생산성 방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서아프리카 세네갈과 가나는 벼가 핵심 작목이다. 세네갈에서 코피아가 지원한 벼 신품종 보급 사업에 참여한 농가들은 지역 평균보다 약 1.5배 높은 수확을 기록했다.


코피아 센터는 아프리카에서 괄목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코피아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특히 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앞으로 농진청에서 펼칠 '농업외교'가 아프리카와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일부 지역에서는 코피아를 통해 도입된 품종이 사실상 표준 정자로 자리 잡으면서 지방정부가 자체 예산으로 종자를 확대 보급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가나에서는 K-라이스벨트 시범지를 중심으로 수백 헥타르 규모 벼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단계별로 연 수천 톤 생산을 목표로 한 로드맵이 추진 중이다.


남부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는 가뭄 내성 옥수수가 상징적인 성과로 꼽힌다. 코피아 센터는 100h 이상에서 상업적 재배가 가능하도록 품종과 재배기술을 패키지로 지원했다. 극심한 가뭄과 취약한 토양 환경 속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벼·씨감자·옥수수 등 작목별로 특화된 성과가 축적되면서, 코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실패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농업 ODA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수확·소득·안보…아프리카가 코피아를 선택한 이유


아프리카 각국이 코피아에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성과가 숫자로 확인된다는 점이다. 세네갈·가나에서 참여 농가의 벼 수확량이 지역 평균보다 1.5배 안팎 높아지고, 케냐·우간다에서 농가 소득이 1.3~2배 수준으로 늘어난 사례는 정책 담당자에게 무엇보다 설득력 있는 근거다.


짐바브웨·우간다처럼 기후 리스크가 큰 나라에서 가뭄 내성 품종과 물 관리 개선을 통해 극단적인 기상 조건에서도 수확량을 두세 배 수준으로 방어한 경험은, 코피아를 ‘식량위기 안전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 ‘현지 맞춤형+동반 연구’ 방식이 만들어낸 신뢰다. 코피아는 한국에서 완성된 기술을 그대로 들여보내는 대신, 각국 농업연구소·농업부와 함께 시험재배·품종 선발·재배기술 검증을 거친다.


우간다 도호 지역의 광활한 벼 사업장 모습. 코피아 우간다 센터는 이 광활한 평야에서 한국의 벼 종자를 개량해 보급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그다음 단계에서 시범포 운영, 농민 교육, 저장·유통 개선 등을 한 패키지로 설계해 현장에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구조다. 케냐의 씨감자, 세네갈·가나의 벼, 짐바브웨의 옥수수 협력이 모두 이런 공동 시험과 현지화 과정을 거쳐 상업 단계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코피아는 ‘원조 사업’이 아닌 ‘연구·정책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식량·기후 위기 속에서 농업은 다른 어떤 분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협력 축으로 부상했다. 곡물 수입 의존도와 기후 리스크가 동시에 높은 아프리카에서 종자·재배기술·관개·저장·유통의 취약성은 곧 식량안보와 거시경제의 리스크로 직결된다.


지난 2024년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공동선언이 농업·식량안보·기후 대응을 핵심 축으로 명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정상 차원의 약속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구체적 플랫폼으로 코피아가 부각되고, 이 틀 안에서 카메룬을 포함한 아프리카 각 센터의 역할 역시 한층 무게를 얻고 있다.


설영주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국외농업기술과 연구관은 “코피아는 한국 농업기술을 그대로 들여보내는 창구가 아니라, 각 나라 연구자·농민과 함께 현지에 맞는 해법을 찾아가는 실험실에 가깝다”며 “아프리카 각 코피아 센터에서 쌓이는 수확과 소득의 변화가 결국 한-아프리카 농업협력의 신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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