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센 젤랴스코프 불가리아 총리가 11일(현지시간) 소피아 국회의사당에서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동유럽 국가 불가리아에서 정부의 사회보장 분담금 인상안이 촉발한 Z세대(1990년대~2000년대생) 주도의 반정부 시위로 총리가 물러났다. 유럽에서 Z세대가 주도한 시위로 지도자가 물러난 첫 사례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로센 젤랴스코프 불가리아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야당이 제출한 정부 불신임안 의회 표결 직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연령과 민족·종교의 사람들이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뜻은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가리아 시민들은 내년 예산안에 담긴 사회보장 분담금 인상 계획에 반대하며 연일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년 사회보장 분담금 인상안이 정부의 부패를 감추기 위한 사실상의 세금 인상이라며 공공 재정 관리기관의 부패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불가리아 정부는 이달 초 사회보장 분담금 인상 등이 포함된 예산안을 철회했지만, 시위는 오히려 주요 도시 곳곳으로 확산했다.
이날 수도 소피아에만 최대 15만명이 모였다. 소피아의 국회의사당 건물 벽에 사퇴를 촉구하는 문구를 비추고,대형 스크린을 놓고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영상을 상영했다. 시위대는 정치인들의 캐리커처가 담긴 팻말을 들며 “진절머리가 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소피아 뿐만 아니라 플로브디프, 바르나 등 불가리아 전역에서 수천 명이 모여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내년 1월1일로 예정된 유로화 도입 이후 물가인상 우려도 민심을 자극했다. 불가리아는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지만, 인플레이션 탓에 유로존 가입을 연기해 왔다. 특히 이번 시위는 Z세대 청년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불가리아의 Z세대는 1989년 공산정권의 붕괴와 그 이후 이어진 경제위기를 겪지 않은 세대로 대부분이 대규모 시위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조직된 Z세대 이들 시위대는 ‘Z세대가 온다’, ‘Z세대 대(vs) 부패’라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민주주의연구센터의 마틴 블라디미로프 국장은 “이번 시위는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를 장악해온 뿌리 깊은 집권층의 관행에 맞서는 젊은 세대 시민들의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0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시위대가 대형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불가리아에서는 수년 간 정치적·사회적 분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4년간 무려 7번의 총선을 치렀고 가장 최근 선거는 지난해 10월에 진행됐다. 불가리아 헌법에 따라 루멘 라데프 대통령은 의회 내 정당들에 새 정부 구성을 요청해야 하는데, 실패할 경우 대통령이 새 선거가 진행될 때까지 운영될 임시 정부를 임명하게 된다. 젤랴스코프 내각은 후임자가 선출될 때까지 직무를 유지한다.
한편 정부와 기득권에 분노한 Z세대의 시위는 불가리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최근 수 개월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네팔과 마다가스카르, 모로코, 멕시코, 탄자니아 등지에서 부패와 불평등에 반발한 Z세대가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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