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 추리보다 길어진 응징의 시간 [볼 만해?]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16 08:44  수정 2025.12.16 08:44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찬호께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을 연출한 신재호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원작에 폐를 끼치지 않고 싶다"고 말했지만 전지전능한 탐정 설정과 문어체 대사, 어색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에 완전히 어우러지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긴다.


ⓒ제이씨엔터웍스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이하 '망내인')은 냉혈한 사립 탐정 준경(김민규 분)이 의뢰인 소은(강서하 분)의 동생 지은(박율리 분) 사건을 파헤치는, 인터넷 속 살인자를 쫓는 네트워크 추리물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카피만 보면 차갑고 날 선 스릴러를 기대하게 만든다. 실제로도 초반에는 냉혈한 사립 탐정과 의뢰인이 인터넷 속 익명의 살인자를 쫓는 과정이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준경이 SNS, 익명 게시판, 학교 서버와 CCTV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단서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속도감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고 흥미롭다. 하지만 범인이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밝혀지면서 영화의 중심은 '추리'에서 '응징'으로 이동한다.


범인은 같은 학교 학생 하연(성희현 분)과 해킹에 능한 그의 오빠다. 하연은 옥상에서 키스하던 여자 동성 커플을 학교에 찔러 퇴학시킨 인물로, 동성 친구 수민에게 감정을 가졌던 지은은 이를 보고 분노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연을 겨냥한 글을 올린다. 하연이 왕따가 된 뒤, 오빠가 동생을 위해 지은을 겨냥한 악의적인 글을 퍼트리며 비극은 시작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이 비틀린 관계의 전모를 밝히면서 동시에 하연에게 일종의 '참교육'을 가하는 이야기에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사건의 구조와 감정의 배경을 풀어내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그 과정이 다소 길게 느껴져 추리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은 중반 이후 점점 희미해진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준경이란 캐릭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준경은 영화 속에서 거의 전능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진다. 지은이 다녔던 고등학교 전교생의 휴대전화는 물론 각종 커뮤니티와 게시판, 심지어 범인의 동선과 스케줄까지 모두 파악하고 통제하는 인물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정도까지 한 사람이 모든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다. 특히 후반부에 준경이 하연을 상대로 공들인 함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파트에서는 그의 능력이 인간을 조금 넘어선 듯 느껴지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줄어드는 역효과도 있었다.


김민규는 "하연은 이미 보고 싶은 것에만 매달린 상태라 다른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장면이 깔끔하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장르적 허용을 감안하더라도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현실감의 최소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망내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화 속 텍스트의 양이다. 게시판 글, 악플, 카톡 대화, DM, 기사 캡처까지 거의 모든 정보가 글자로 화면을 채운다. 신 감독은 "소설 속 텍스트들을 지금 시점으로 옮기면서 날짜, 시간, 표현까지 모두 새로 썼다. 댓글과 악플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타이핑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영화의 첫 장면부터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하연과 오빠가 주고받는 카카오톡 창에서 하연의 메시지가 계속 '~한대'가 아닌 '~한데'로 쓰이는데 하연의 학생다움을 강조한 말투인가 싶었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은 텍스트를 감독 혼자 쓰다 보니 감독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실수였다.


또한 신 감독은 "소설의 기승전결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뺀 부분은 있어도 큰 각색은 없다"고 밝혔다. 원작의 대사, 추리 과정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온 덕분에 서사와 논리는 탄탄하지만 그만큼 대사들이 전반적으로 문어체를 유지한다. 긴 설명과 부사가 많은 문어체 대사가 실제 입에서 나오는 순간 어색하게 튀어오르고 후반으로 갈수록 발음이 뭉개져 잘 들리지 않는 구간도 있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망내인’은 익명성 뒤에 숨은 온라인 폭력이라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화두를 다룬다. 악플과 루머가 한 사람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분명히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너무 빨리 밝혀져 추리 스릴러로서의 쫄깃함이 금방 사라지고 후반부 '참교육' 서사가 스토리를 늘어지게 만든다. 여기에 주연 배우들의 문어체 대사와 흐릿한 발음까지 더해져 힘이 빠진다. 김민규의 팬이거나 원작 소설과 온라인 폭력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탄탄한 미스터리와 압도적인 추리 쾌감을 기대한다면 아쉬움을 감수해야 할 듯하다. 러닝타임 89분, 15세 이상 관람가.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