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넘어선 생수 시장
내년부터 무라벨 전면 시행
설비 투자 부담, 업계 고민
QR 의존, 알권리 보완 과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세븐일레븐에무라벨 생수 아이시스 2L(6입)가 진열돼 있다.ⓒ뉴시스
환경 보호를 내건 무라벨 생수 제도가 한 달 뒤 본격 시행된다. 정책 방향은 분명하지만, 현장 안착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업계 부담과 소비자 정보 접근성에 대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제도의 성공 여부는 현실과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릴지에 달렸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수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3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 6000억원 수준이던 시장이 10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한때 대체재로 여겨졌던 생수는 이제 정수기 시장 규모를 따라잡았고, 향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확대의 배경에는 소비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물을 끓여 먹거나 정수기를 놓기보다는 간편하게 생수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쿠팡 등이 제공하는 익일·새벽배송 서비스가 보편화한 것도 생수 시장의 확대를 불러왔다.
다만 생수 시장의 급성장은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낳았다. 생수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아파트 분리수거일마다 대량의 빈 생수병이 배출됐다.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가운데 생수와 음료 용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41.9%에 달한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생수·비알코올 음료업체 페트병 제품의 10% 이상을 재생원료로 생산하도록 의무화하는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다. 고품질의 재생원료 확보를 위해 무라벨 생수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원료 생산업체 대상으로 3%의 재생원료 사용의무를 부여했으나, 실효성이 낮아 적용범위·이용목표율을 확대했다.
이번 개정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환경부 추정대로라면 현재 페트병 먹는샘물·음료류 제조사 10여 곳으로, 법령 시행시 연간 2만톤의 재생 원료가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온라인·오프라인 소포장 생수는 무라벨 방식으로만 생산할 수 있다.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오프라인 낱병 제품은 1년간 전환 안내 기간을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연간 2200톤 이상의 플라스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화에 발맞춰 이미 일부 생수·음료업체들은 주요 제품에 재생원료를 접목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 제주개발공사, 동아오츠카 등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일찌감치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 소비자와 유통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현재 정부와 업계가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제도가 보다 안정적으로 안착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직원이 ‘시그니처 무라벨 맑은샘물’을 카트에 싣고 있다.ⓒ뉴시스
하지만 생수 제조 현장에서는 막바지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라벨 전환은 단순히 라벨을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 무늬 각인 장비 도입 등 추가 설비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벨로 제공하던 제품명·수원지·성분 정보를 병 표면이나 QR코드로 대체해야 하면서, 일부 업체는 생산라인에 각인 장비를 추가하거나 공정을 조정하고 있다. 업계는 이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투자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생수업계 관계자는 “환경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무라벨 도입 만을 위해 신규 기기를 도입해야 하는 구조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중소 업체일수록 초기 투자 부담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처 간 관점 차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제기된다.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 정책 관점에서는 무라벨이 플라스틱 감축이라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치지만, 소비자 정책이나 인권 관점에서는 정보 접근성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라벨 대신 QR코드로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상,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디지털 취약계층은 원수지·수원지·성분 등을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매장에서 낱병 생수를 구매하는 고령 소비자의 경우, 기존에는 라벨을 통해 제품을 구분할 수 있지만 무라벨 전환 이후에는 외형 만으로 브랜드나 정보를 식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소비자 알권리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경 정책의 방향성은 중요하지만,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QR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정보 격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감축 효과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생수 플라스틱 사용량의 상당 부분이 배달·포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만큼, 무라벨 전환만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감축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많은 배달·묶음 포장 구조에 대한 개선 없이 무라벨 정책 만으로는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종합적인 감축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르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라벨 제거 자체보다 배달 포장과 물류 구조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더 큰 문제라는 인식도 있다”며 “무라벨 정책이 실질적인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