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연계에서는 동화적 서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과 연극이 성인 관객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동화가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무해한 위로와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힐링 콘텐츠’로 재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성인 관객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탄탄한 원작을 무대 예술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잇따라 개막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뮤지컬 '푸른 사자 와니니' ⓒ연합뉴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연대와 동행의 메시지를 담은 뮤지컬 ‘긴긴밤’(1월 21일~3월29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이 있다. 루리 작가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바다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서사는 상실과 고독을 겪어본 성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작품은 원작의 감동을 서정적인 음악과 입체적인 연출로 풀어내며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성장의 고통과 극복을 다룬 뮤지컬 ‘푸른 사자 와니니’(1월 3일~1월 25일,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역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현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무대화한 이 극은 사자 무리에서 쫓겨난 암사자 와니니가 초원을 떠돌며 진정한 용기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약점이 있는 존재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은 경쟁 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존감 회복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아프리카 초원을 형상화한 역동적인 무대 예술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고전의 힘도 여전하다. 뮤지컬 ‘앤ANNE’(2025년 11월 5일~2026년 2월 15일, 대학로자유극장)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명작동화 ‘빨강 머리 앤’을 재해석하여 주인공 앤이 전하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앤의 성장 시기에 따라 여러 명의 배우가 배역을 나누어 맡는 독특한 연출은 캐릭터의 내면 변화를 다각도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정서적 정화 작용을 일으킨다. 특히 성인 관객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동시에 앤의 씩씩한 태도에서 새로운 위로를 얻는다. 이번 공연은 극단 걸판의 창단 2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째 기획 공연으로 진행되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Johan Persson
유사한 흐름으로, 검증된 애니메이션 IP(지식재산권)를 무대로 옮긴 대작들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을 연극으로 재탄생시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거대한 퍼펫과 정교한 무대 장치를 통해 원작 애니메이션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실재하는 공간으로 재현한다. 인간의 탐욕과 순수한 성장을 다룬 이 작품은 1월 7일부터 3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리지널 투어 공연으로 펼쳐진다. 또 전 세계적인 흥행작인 디즈니의 ‘겨울왕국’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프로즌’ 또한 7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한국 초연을 앞두고 있어 동화적 상상력의 무대화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동화 기반의 콘텐츠가 성인 관객을 사로잡는 현상은 동화가 지닌 본질적인 속성인 ‘명료함’에 기인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선함에 대한 믿음, 연대의 중요성, 스스로를 긍정하는 태도와 같은 가치들은 복잡하고 모호한 현실을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가장 명확한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면서 “검증된 원작의 힘과 무대 예술의 창의적 재해석이 만난, 동화적 상상력이 전하는 울림은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성인들의 지친 내면을 어루만지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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