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곧 권력…세종시즌 구독권 매진이 던진 화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13 07:22  수정 2026.01.13 07:22

공공극장이 단순한 공연 공간 제공자의 역할을 넘어,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제작극장’으로의 전환을 완성해가고 있다. 자체 예술단을 활용한 창작물을 꾸준히 선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레퍼토리 시즌제’라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통해 구체화되는 추세다. 특히 최근 주요 공공극장에서 나타나는 성과들은 제작극장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단순한 예술적 시도를 넘어 관객의 두터운 신뢰와 브랜드 팬덤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세종문화회관

제작극장으로서의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세종문화회관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안호상 사장 취임 이후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거듭날 것을 공표하며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실인 ‘2026 세종시즌’은 최근 구독 상품인 ‘구독 플러스’ 1000세트가 판매 개시 56분 만에 전량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3년 연속 오픈 당일 매진 기록이다.


여기에 ‘구독 라이트’ 1000개 세트 등까지 전년 대비 물량을 두 배로 확대해 선보인 총 2000세트의 구독 상품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점은 제작극장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이 구축한 콘텐츠에 대한 관객의 확신을 입증한다. 이번 시즌은 전체 27편의 공연 중 85%인 23편이 소속 예술단의 자체 제작 작품으로 채워졌으며, 그중 63%(17편)가 이미 검증을 거친 고정 레퍼토리로 구성되어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러한 제작극장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레퍼토리 시즌제는 2012년 국립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됐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의 제작극장으로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는 안호상 사장이 당시 국립극장의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국립극장은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매년 일정 기간 상시 운영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국립극장의 사례는 제작극장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가시적인 성과를 잘 보여주는데, 시즌제 도입 초기 당시 관객 수가 약 2.5배 증가하고 객석 점유율이 92%에 달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 현재 국립극장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향연’ 등 관객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인기 레퍼토리와 신작을 조화롭게 배치하며 제작극장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제작극장의 흐름은 민간 영역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LG아트센터는 기획공연 시리즈 ‘콤파스’를 통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담은 해외 작품들부터 자체제작한 프로덕션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앞서 선보인 ‘벚꽃동산’ 등을 통해 글로벌 공동제작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창작물을 직접 생산하는 제작극장으로서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식이다.


올해도 역시 연극 ‘타인의 삶’ 손상규 연출의 새 작품 ‘바냐 삼촌’, 소리꾼 이자람의 ‘눈, 눈, 눈’ 그리고 연극 ‘유령들’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입증한 양손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민중의 적’ 등 세 편 제작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순히 무대라는 하드웨어를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어떤 작품을 만들고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안목과 기획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중심의 생산 기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제작극장 방식이 공연계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안정적인 제작 환경 조성에 있다. 사전에 계획된 예산과 일정에 따라 작품을 제작할 수 있어 예술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창작 여건을 제공하고, 이는 곧 작품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극장 입장에서는 시즌 티켓 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관객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을 균형 있게 제공받으며 폭넓은 선택권을 누리게 되고, 이는 특정 극장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역시 이번 ‘2026 세종시즌 구독과 주요 패키지의 연이은 매진과 관련해 “지난 4년간 추진해 온 예술단 중심 제작극장과 레퍼토리 운영이 관객의 선택으로 확인된 결과”라며 “이제 단발성 흥행을 넘어 관객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고 축적되는 레퍼토리를 통해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극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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