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없으면 안 사는 한국산 전기차 [기자수첩-산업]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2.20 07:00  수정 2026.02.20 07:00

보조금 책정 되자마자 현대차 대신 테슬라·BYD 택해

국산 전기차에 보조금 더 얹어줬더니…연말 판매 급락

전기차 보급기 진입…선택지 늘고 소비자 냉정해져

보조금 차등 지급 없애고 국산차 경쟁력 높여야

BYD 씨라이언7ⓒBYD코리아

국내 전기차 시장에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새해 첫 달, 현대차가 1275대를 판매하는 동안 테슬라는 1966대, BYD는 1347대를 팔아치운 것이다. 기아가 3628대로 1위를 차지하며 나름대로 국산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완성차 업계 맏형 현대차는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이 숫자는 단순히 '수입차가 잘 팔렸다'는 내용을 넘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새해 보조금이 확정되자마자 쌓였던 대기 수요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지금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전기차 구매는 그동안 보조금이라는 '신호'에 크게 좌우됐다. 연말 보조금이 소진되면 시기를 미루다가, 연초 보조금이 책정되자마자 계약과 출고가 몰리는 장면이 반복돼왔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보조금 없이 '생돈'을 내고 전기차를 사려는 소비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보다 월등히 비싼 전기차 가격에 소비자들은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주는 차를 구매했고, 자연스레 선택은 국산 전기차로 몰렸다. 현재 국내 보조금 정책상 국산 전기차의 보조금이 수입 전기차보다 수백만원 더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난달 현대차보다 테슬라, BYD를 선택한 소비자가 더 많다는 건 보조금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보조금 많이 주는 차'가 아니라, '보조금이 적어도 사고 싶은 차'로 시장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보조금이 소진된 이후의 흐름을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기차 보조금이 전국 대부분 지자체에서 소진된 지난해 12월, 테슬라는 4322대, BYD는 1152대를 판매한 반면 현대차는 505대, 기아는 881대 판매하는데 그쳤다. 보조금이 없어지자 국산 전기차 판매는 급감했고, 수입 전기차는 오히려 존재감을 키웠다.


이 지점에서 정부와 국내 업체들의 전략이 낳은 '부작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쥐어준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판매를 떠받쳤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가격 구조를 왜곡시킬 수 밖에 없어서다.


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전제 가격'에 안주하는 동안, 수입 전기차는 적은 보조금 안에서 가격과 상품성을 설계해야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보조금이 있으나 없으나 매력적인 가격대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조금이 사라지면 오히려 수입 전기차가 덜 비싸 보이는 기묘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우리 업체들을 돕기 위해 설계됐는데, 보조금을 더 얹어준 이후 국산차가 시장에서 더욱 불리해지는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전세계가 중국산 전기차에 장벽을 세우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 지원책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시장이 성숙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면에서 눈에 보이는 차등 지원이 과연 앞으로도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보조금은 언젠가 사라지고, 보조금으로 우리 업체를 감쌀 수록 경쟁사의 상품과 가격 전략은 더 치밀해진다. 전국에 촘촘히 깔린 정비망을 뒤로하고, 예약 없이는 정비소 방문조차 쉽지 않은 테슬라를 기꺼이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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