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 ‘과잉 충성’ 경쟁에 일선 행정은 뒤죽박죽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1.21 17:19  수정 2026.01.21 18:18

대통령 일정따라 장관 일정 수시 변경

업무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 ‘곤혹’

“장관 돌출 행동, 정책 안정성 훼손”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시스

장관들의 대통령을 향한 충성 경쟁이 일선 공직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미 확정한 사업이나 계획을 대통령 일정에 맞춰 수시로 바꾸는가 하면, 비공개 자료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실시간 알려지는 일도 빚어진다.


대통령 눈에 들기 위한 부처 수장들의 잦은 계획 변경에 일선 정책 현장에서는 예측불허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최근 A부처는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문제로 시끄러웠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설문조사 결과가 대통령과 장관 대화에서 알려진 것이다. 애초 A부처는 당분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 계획이 없었다. 민감한 내용인 만큼 조사 결과를 철저하게 분석한 뒤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일 예정에 없던 정보가 흘러나오자, A부처는 부랴부랴 ‘보도참고자료’를 준비했다. A부처는 21일 11시까지 출입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하기로 했으나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최종 배포는 12시 30분이 넘어서 이뤄졌다. A부처는 이번과 같은 돌발적인 일정이나 보도자료 배포가 최근 자주 이뤄지면서 내부에서도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B부처에서는 최근 보도자료에 ‘대통령 지시 사항’을 과도하게 강조해 ‘과잉 충성’ 논란을 낳기도 했다. C부처에서도 대통령 일정을 이유로 예정했던 계획을 당일 취소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눈치 보기 급급하면 안 돼
‘조변석개’ 정책 안정성 위협할 수도


정책 브리핑이나 자료 발표는 국민에게 정책 과정과 결과를 알리는 일이다. 담당 부서에서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때론 발표 준비에 며칠씩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자료 발표가 취소되거나 연기, 또는 새로 생기는 일이 반복되면 해당 업무를 맡은 일선 공무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정 변경 사유가 장관들의 대통령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바뀌는 일정 가운데 상당수가 대통령과 연관 돼 있다. 대통령이 돋보여야 할 시점에 관심이 분산된다는 이유로 예정했던 일을 취소해 버리면 결국 행정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한 부처 공무원은 “일정이 수시로 바뀌면서 업무가 좀 힘들어지는 부분은 있다”면서 “일단 대통령 일정과 겹치게 되면 우리가 뒤로 빠지는 상황이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전직 관료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워낙 실용과 속도를 강조하는 분이라 부처 수장들로서는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무능하다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설문 결과나 브리핑 취소는 결과적으로 부처가 주관적인 판단을 못 하고 대통령실 눈치 살피면서 자율성이 떨어졌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해당 교수는 “특히 대통령 돌발 질문으로 준비되지 않은 데이터가 공개되면 지지층에게는 ‘시원한 결단’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정책 안정성 측면에서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며 “정책 성과는 대통령이 가져가고, 부작용은 부처가 떠안는 구조가 되면 공무원들은 더더욱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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