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A·라이언 쿠글러·자파르 파나히가 해부한 통제의 자화상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군은 권력의 통제 강화와 표현의 자유 위축 속에서, 저항하는 개인이 어떻게 위협 요소로 낙인 찍히는 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깊은 문제 의식을 투영한 결과로, 주요 후보작들은 장르와 형식을 달리하면서도 공통적으로 권력과 개인의 충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립과 배제를 핵심 서사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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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의 중심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있다. 큰 틀에서는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고군분투라는 익숙한 서사를 따르지만, 그 이면에는 트럼프 시대 이후 미국 사회의 깊은 갈등을 투영했다. 반정부 단체 출신인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카프리오 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민자 차별과 폭력 시위의 양태를 다룬 이 작품은, 그 대척점에 선 백인 우월주의자 스티븐 J. 록조(숀 펜 분)를 통해 권력과 광기가 결탁한 시대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4관왕에 이어 제31회 크리틱스 초이스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독보적인 선두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 죄인들'은 미국의 흑인 역사를 뱀파이어 호러라는 장르적 틀로 재해석하며,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 후보 지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1930년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시민의 저항이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범죄나 괴물로 낙인 찍히는 지를 해부한 이 영화는, 기술 부문 전반에서 압도적 역량을 과시하며 장르 영화의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저항의 서사는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을 통해 더욱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밤길에 개를 친 단순한 교통사고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차를 수리하러 간 정비소에서 과거 자신을 고문했던 정보국 요원의 의족 소리를 알아챈 피해자 바히드의 시선을 쫓는다. 2025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국가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가 일상의 사소한 감각을 통해 어떻게 되살아나는 지를 묘사한다.
특히 이 작품은 감독 자신의 개인사와 맞물리며 더욱 강렬한 울림을 준다.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수배와 징역형을 오가던 파나히는 이 영화를 프랑스와 공동 제작하여 이란이 아닌 프랑스 대표로 오스카에 출품했다. 국가에 의해 지워질 뻔한 예술가가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낸 과정 자체가 영화 밖의 거대한 저항 서사가 된 셈이다. 비록 제83회 골든글로브에서는 4개 부문 후보에 머물며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비영어권 영화 중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브라질의 거장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억압의 반복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1977년 군사 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권력층과의 사소한 갈등 끝에 체제 전복 세력으로 낙인 찍혀 쫓기게 된 지식인 아르만도(와그너 모라 분)의 여정을 그린다. 제78회 칸 영화제 감독상과 제83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개인의 기억이 국가적 망각에 어떻게 맞서는 지를 장엄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는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해 음모론과 권력의 가스라이팅 구조를 해부하며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엠마 스톤)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이 진실을 말하더라도 권력에 의해 얼마나 쉽게 광기로 치부되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들 모두, 과거 은유와 상징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권력과 억압의 실체를 보다 직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카데미가 올해 저항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표현의 자유 위축과 통제 강화가 보편적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자리한다.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며 표현의 문턱이 높아진 시대 속에서 이 작품들은 영화가 사회의 감각 기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며, 권력이 그어 놓은 선을 넘으려는 개인들의 투쟁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유효한 서사임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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