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을 반대한 사람까지 유죄라면, 도대체 무죄는 누구냐" [기자수첩-정치]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6.02.11 06:00  수정 2026.02.11 06:34

'전범 청산' 뉘른베르크에 샤흐트 기소되자

승전국 판사들조차 "도대체 무죄는 누구냐"

샤흐트의 기소와 정진석의 기소는 판박이

80년 전 뉘른베르크 만큼의 이성은 있는가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미임명'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며 몸 수색을 받고 있다. ⓒ뉴시스

얄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는 독일 나치 정권에서 제국은행(Reichsbank) 총재와 경제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피하면서 독일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메포어음(Mefo-Wechsel)을 도입했다. 샤흐트의 경제적 역량 덕분에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으로 인한 실업난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는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던 1939년 1월 샤흐트는 군비 증강, 궁극적으로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다가 히틀러에 의해 제국은행 총재직에서 해임당했다. 이후 2차대전 중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의사결정에서 배제돼 있었다. 전쟁 막판에는 '위험분자'로 분류돼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샤흐트가 2차대전이 끝나자 어처구니 없게도 전범으로 기소됐다. 나치 정권에 몸담고 협력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나치 전범 청산을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 '반평화 범죄 공모죄'라는 애매모호한 죄목으로 기소당했다.


샤흐트의 기소에 승전 4개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 국적 판사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쟁을 반대한 사람까지 유죄라면, 도대체 무죄는 누구냐"는 것이었다. 샤흐트의 기소는 뉘른베르크 재판이 승전국에 의한 '전범몰이' 아니냐는 근본적 의문까지 불러일으켰다. 결국 샤흐트는 무죄로 방면됐다.


샤흐트, 군비 증강 반대하다 해임됐는데
'반평화 범죄 공모죄'로 전범 기소 당해…
승전국 미·영·프·소 판사들조차 고개 갸웃
"전쟁 반대자마자 유죄라면 무죄는 누구"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이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 재판정에 섰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당시에, 윤석열 정부에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몸담았기 때문이다.


정진석 당시 실장이 12·3 비상계엄 당시 의사결정에서 이탈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계엄에 일관해서 반대해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은 '먼지털이'식 수사 과정에서 복수 인물의 진술을 통해 교차검증됐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당일 수석비서관 회의 소집 소식을 듣고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더니 "정진석 비서실장이 혼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회의실로 향한 정 실장에 대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정 실장이 들어오면서 '무슨 일이 터진 것도 아닌데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홍철호 정무수석은 "정 실장이 '비상계엄은 안돼! 지금이 어느 때인데 비상계엄이냐'라면서 집무실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정 실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마주앉아 "비상계엄은 안된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나는 결심이 섰으니, 실장은 더 이상 나서지 말라"면서 제 명을 재촉했다.


이후 정 실장은 의심이 가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집무실에서 마주치자, 윤 전 대통령이 있던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김 장관을 향해 "지금 뭣하자는 것이냐. 역사에 책임질 수 있느냐"라고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내란특검은 정진석 전 실장을 기소했다. 계엄으로는 엮을 여지가 없으니, 계엄 직후의 혼란 과정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를 적용했다. 비서실장은 형식적으로 대통령실의 인사위원장이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인사 검증을 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별건기소가 관행이라지만, 인사 검증을 안한 것이 '내란특검'의 수사 범위며 대상이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2차대전 전에 이미 해임당한 샤흐트가 '반평화 범죄 공모죄'로 기소당했던 것만큼이나 실소가 나온다.


정진석 "비상계엄은 안돼!" 소리 쳤는데
李대통령 "나치 전범 처리하듯 처벌하라"
국무회의 교시 따라서 샤흐트처럼 됐나
계엄 반대마저 유죄라면, 무죄는 누구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군사쿠데타를 해서 나라를 뒤집어놓는다든지, 국민이 맡긴 권력으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하는 것은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이, 영원히 살아있는 한 처벌하라"며 "책임감을 가지고 해달라"고 당부했다.


과연 정진석 전 실장이 기소당하는 것을 보니, 이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을 내란특검이 충실히 받들어 '나치 전범 재판 하듯이' 처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진석 전 실장의 기소와 얄마르 샤흐트의 기소는 시공을 뛰어넘어 쌍둥이이며, 판박이다.


이제 공은 사법부에게로 넘어갔다. 나치 독일의 침략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인적·물적 희생을 겪어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던 승전국 국적 판사들로 구성된 뉘른베르크 재판부도 "전쟁을 반대한 사람까지 유죄라면, 도대체 무죄는 누구냐"라고 외쳤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줄을 모르고' '역사에 책임질 수 없는' 12·3 비상계엄을 주동한 자들은 확실히 처벌받고 단죄돼야 한다. 하지만 "계엄을 반대한 사람까지 유죄라면, 도대체 무죄는 누구냐." 그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 때의 서구 세계만큼이나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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