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억원 투자한 로얄캐닌 김제공장…‘스마트 물류’가 승부처 [팻밀리②]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2.15 11:00  수정 2026.02.15 11:00

펫푸드 선진국들, 선제적 ‘실리콘밸리’ 구축

펫푸드는 바이오 산업…세계는 ‘영양 표준 전쟁’ 중

견종별 1만 개 배합 데이터로 글로벌 벽 넘었다

영양 데이터 축적과 R&D 투자, 스마트 물류 시스템, 아시아-태평양 수출 허브 전략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펫푸드 산업의 경쟁 구조를 단계별로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챗지피티

국내 펫푸드 시장의 80%를 글로벌 브랜드가 점유하고 있는 현실은 단순한 브랜드 선호도를 넘어선 '과학적 격차'의 결과물이다.


특히 세계 1위 브랜드인 로얄캐닌을 필두로 한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이 구축한 견고한 성벽의 핵심은 '철저한 수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적 클러스터 인프라'에 있다.


‘영양학적 정밀함’이 만든 신뢰…감성보다 숫자로 승부하는 글로벌 리더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결정적 비결은 독보적인 영양학적 데이터다. 이들은 전 세계 수의사 및 영양학자들과 협업해 1만 개 이상의 영양학적 배합 공식을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좋은 고기를 썼다'는 홍보 대신, 특정 견종이나 질환을 가진 반려동물이 이 사료를 섭취했을 때 신체 지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수치로 증명한다.


김재영 한국반려동물포럼 회장은 “글로벌 브랜드의 강점은 이 사료를 먹였을 때 아이의 건강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방대한 임상 결과에 있다”며 “국산 브랜드가 착한 원료나 수제(Handmade)라는 감성적 가치에만 집착할 때, 수입산은 철저하게 과학적 결과와 안정성을 팔았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의 분석은 소비자들이 내 아이의 건강 상태에 최적화된 ‘검증된 데이터’를 구매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R&D에 재투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수의사들의 처방 근거가 돼 강력한 전문가 신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수의사와 영양학자가 견종별 데이터와 분자 구조 분석을 기반으로 사료 성분을 정밀 검증하는 미래형 펫푸드 연구실을 형상화한 이미지. ⓒ챗지피티
해외 선진국의 ‘펫푸드 클러스터’…국가가 설계한 바이오 산업의 성지


펫푸드 선진국인 미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일찍이 펫푸드를 농업의 부속물이 아닌 '고부가가치 바이오 산업'으로 인식하고 전용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대표적인 사례인 프랑스 에이마르그(Aimargues) 지역은 펫푸드판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이곳은 연구소, 대학, 생산 시설, 물류 허브가 한데 모여 있어 신제품 개발부터 임상 테스트, 글로벌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네덜란드의 펫푸드 클러스터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인근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원료의 기능성을 입증하고, 이를 국가 공인 데이터베이스화해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이러한 클러스터 내에서는 중소기업들도 공동 연구 장비를 활용해 고가의 성분 분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브랜드들은 클러스터를 통한 물류 최적화로 비용을 낮추고 그 여력을 다시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며 “국가 차원의 데이터 지원 인프라 없이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는 이 거대한 글로벌 생태계와 경쟁하기 역부족”이라고 조언했다.


왼쪽은 자연 원료와 수제 이미지를 강조한 감성적 접근, 오른쪽은 정밀 계측과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설계를 대비해 보여주는 펫푸드 산업의 두 전략을 형상화한 이미지. ⓒ챗지피티
960억원 투자한 로얄캐닌 김제공장…‘스마트 물류’가 가른 승부처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을 단순한 판매처로 보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생산 및 물류 거점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지난 2018년 전북 김제에 960억원을 투입해 완공된 로얄캐닌 생산 공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한국의 지리적 이점과 우수한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 시장까지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를 단축해 사료의 핵심인 ‘신선도’를 극대화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도입한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다. 사료는 유통 과정에서의 온도 변화에 따라 영양 성분이 파괴되거나 산패될 위험이 크다.


글로벌 리더들은 원료 입고부터 최종 소비자 배송까지 전 과정의 온·습도와 이동 경로를 실시간 데이터로 관리한다. 사료의 품질을 과학적으로 보증하는 시스템이다.


국내 업계에 대한 유통 현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수입산을 고집하는 건 단순히 브랜드 때문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먹일 사료가 어떤 환경에서 관리됐는지 데이터로 입증되기 때문”이라며 “국산 사료가 프리미엄 시장에서 밀리는 근본적 이유는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증명하지 못한 실력의 차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K-펫푸드의 생존은 수입 브랜드가 선점한 데이터 신뢰를 실질적으로 뺏어올 수 있는 ‘현장 밀착형’ 인프라와 데이터 확보에 달려 있다.


단순히 규모를 자랑하는 시설보다 실제 제품 신선도와 영양학적 안정성을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느냐가 국산 사료 브랜드의 명운을 결정할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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