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본 '첫 대미 투자' 속도전에 "한국도 제도·실행력 갖춰야"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6.02.19 11:50  수정 2026.02.19 11:51

日 에너지·전력·다이아 관련 52조원 규모 투자키로

韓에 독촉장 되나…재계,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촉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관세 등 통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따라 최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내걸고, 그 첫 투자 세트로 미국 내 3개 사업(총 360억달러)을 공개하면서 한국 재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투자 이행을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투자 압박과 통상 리스크가 동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에선 "한국도 제도와 속도를 갖춰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전날 미국 오하이오주의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과 조지아주의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시설 건설, 텍사스주의 석유·가스 수출 항만 정비 등 총 360억달러 규모의 3개 프로젝트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SNS에 "일본과의 거대한 무역합의가 막 출범했다"며 "일본의 미국에 대한 5500억달러 투자 약속에 따른 첫 번째 투자 세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개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 산업 기반을 재활성화하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 및 경제 안보를 전례 없이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한 뒤 "오하이오 가스 발전소는 역사상 최대 규모(9.2GW)가 될 것이며, 텍사스 등 아메리카만 인근의 액화천연가스 시설은 수출 증대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이끌 것이다. 외국 공급원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을 끝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일본의 대미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취임 직후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에게 대미 투자를 최우선 과제로 주문했고, 이후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을 워싱턴 DC에 급파해 3개 프로젝트에 모두 합의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미·일 정상 회담이 이뤄지는 다음 달 19일 2차 프로젝트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025년 10월 28일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희토류 공급망 협정서에 서명한 후 이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과 일본이 1호 투자 프로젝트를 확정하면서, 한국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장 먼저 확정된 일본의 제1호 안건은 EU와 한국의 모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재계가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이른바 '관세 롤백'이 현실화되는 경우다. 그간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 또는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분야까지 관세 부담이 확산될 경우, 자동차·부품, 의약품 등 주요 수출 품목뿐 아니라 연관 소재·장비·물류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동맹국 간 비교에서 한국 기업의 부담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라며 "정책 대응이 지연되면 기업들은 투자 결정을 미루거나 비용을 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는 일본의 속도감 있는 대미 투자를 '정책 패키지형'으로 보고, 한국도 투자 실행력을 끌어올릴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재계는 국회와 정부에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대미 투자 실행을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것이다. 경제6단체는 최근 성명에서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 바이오 등 산업 전반의 대미 수출에 막대한 타격이 초래될 수 있다"며 "기업들이 관세 불확실성에 노출되지 않도록 특별위원회의 조속한 합의를 통한 2월 내 국회 통과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상업적 합리성'을 갖춘 투자처 발굴과 프로젝트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재계에서 나온다. 일본처럼 투자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국내 기업들이 관련 기자재 공급과 참여 과정에서 우선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통상·투자 협의에서 기업 참여의 틀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다만 재계 내부에서도 속도전만을 강조하기보다, 수익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한 선별 투자 원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관세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기업 재무 부담을 키우거나 투자 혜택이 일부 업종에 편중돼 산업 내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공급망 전반을 고려한 투자 포트폴리오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도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회는 대미투자특별법 논의를 위한 특위 구성 등에 착수했고, 정부도 통상 실무 협상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건은 예측가능성"이라며 "관세·세제·인허가·금융 지원을 묶은 원스톱 패키지를 마련하고, 대미 협상에서 우리 기업이 기자재·시공 등에서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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