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서 정주영 추모 음악회 개최…2500여명 참석
세계적 피아니스트 4인 협연…'이어지는 울림'으로 철학 계승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아산 정주영 창업회장의 정신이 음악으로 재조명됐다.
현대차그룹은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을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현대차그룹은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서서 길을 개척한 정주영 창업회장의 삶과 철학이 세대를 넘어 현재에 더 큰 울림으로 공명하고, 인류 사회를 위한 혁신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이어지는 울림’이라는 주제로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 등 네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참여해, 정주영 창업회장의 삶과 정신을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다.
이번 추모 음악회에는 정·관계, 재계,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주영 창업회장 후손들, 현대차그룹 임직원 등 총 2500여명이 참석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미래 인재들과 소방공무원, 국가보훈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사회복지단체 등 공익에 기여하는 인사들도 초청됐다.
정의선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번 추모 음악회는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깊은 ‘울림’을 기리기 위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셨고, ‘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은 “25년이 지났지만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그 울림은 저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며, 많은 지혜를 배운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할아버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며 ‘사람을 위한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음악회는 한 대의 피아노에 김선욱, 조성진이 나란히 앉아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하며 시작됐다. 이어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선우예권, 임윤찬이 연주했고,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네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리스트의 ‘헥사메론’을 선보였다.
정주영, 대담한 비전·사람 위한 혁신으로 韓 산업 발전 길 개척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세계적 영향력이 큰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지난해 정주영 창업회장 - 정몽구 명예회장 - 정의선 회장 등 현대차그룹 3대(代) 경영진을 ‘100주년 기념상(Centennial Award)’ 수상자로 선정했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3대(代) 경영진에 대해 “독창적인 아이디어, 창의적인 사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굳은 의지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형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산업화 및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평가의 중심에는 정주영 창업회장으로부터 이어져온 헤리티지가 자리잡고 있다.
가난한 농사꾼의 첫째로 태어난 정주영 창업회장의 시작은 맨손이었다. 부두 하역 노동자, 건설현장 일용직, 공장 잔심부름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성실함과 신용으로 인수한 쌀가게는 일본 총독부의 쌀배급제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고, 전 재산과 사채까지 얻어 투자한 자동차 정비공장은 개업한지 한달도 안 돼 화재로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새롭게 시작한 정비공장과 토건회사도 6.25전쟁으로 자산을 잃고 부산 피난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이러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결국 건설,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일궈내며 한국 경제의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고, 국가 경제의 고비마다 혁신으로 돌파구를 열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하다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 ⓒ현대자동차그룹
‘현대(現代)’라는 사명에는 1940년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현대화를 지향해 모든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담겨 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1946년 자동차 정비업체인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건설사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1950년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창업하고, 전쟁 이후 다리, 댐, 발전소, 도로 등을 건설하며 국토 재건과 경제 부흥을 위해 힘을 쏟았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항상 눈앞의 이익보다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독자 기술 확보와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국가에서 기업이 더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립과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후 낙동강 고령교, 한강 인도교, 인천 제1도크 등 복구공사, 비료공장, 화력발전소, 댐 건설 등 국가 재건 사업을 수행하면서도 미국·일본 등 선진업체의 단순 하도급이 아니라 자체 기술력 확보에 매진했다.
또한 1960년대 당시 정부 발주공사에 의존하고 있던 국내 건설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해외로 눈을 돌려 한국 역사상 최초 해외 공사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특히 1970년대 세계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외환 부족 등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정주영 창업회장은 중동건설 시장에 진출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성공시켰다. 총 공사금액만 한국 정부 한해 예산의 약 20%인 9억3천만달러의 대규모 역사(役事)로, 국가 외환 부족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한국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을 이끄는 교두보가 되었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자동차기업을 설립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국토에 길을 만들고 그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생산해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생필품도 부족하던 시절 사람과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앞서 꿰뚫어본 것이다.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후 정주영 창업회장은 해외 메이커의 단순 생산기지라는 쉬운 길을 거절하고, 자동차산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독자 모델 개발과 기술 국산화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국 최초 대량 양산형 고유모델 포니 개발을 성공시키고, 이후 수출 시장 개척, 제품 라인업 확대, 파워트레인 독자 기술 확보, 부품 밸류 체인 국산화 등을 통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단단한 기반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정주영 창업회장은 청년들을 위한 수많은 일자리와 성장의 기회를 창출해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비전인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인류의 풍요로운 삶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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