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기초과학 난제 해결…‘물의 임계점’ 세계 최초 관측

김지현 기자 (kjh@dailian.co.kr)

입력 2026.03.27 03:00  수정 2026.03.27 03:00

김경환 교수팀, 물 액체-액체 임계점 입증

영하 70℃ 미동결 환경 구현이 핵심

고밀도·저밀도 물 공존 가설 검증

적외선 레이저 동시 활용…한계 돌파

김경환 포항공대 교수가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밝히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됐다.ⓒ뉴시스

국내 연구진이 30여 년간 이어져 온 물의 특이성 원인을 둘러싼 학계 논쟁에 실험적 해답을 제시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김경환 교수 연구팀의 10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 끝에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경환 교수 연구팀이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물리학과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관측했다고 27일 밝혔다.


물 ‘이상현상’…30년 논쟁 ‘임계점 가설’ 주목


X선 자유전자 레이저를 활용해 관측된 액체-액체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실험적 증거에 대한 모식도.ⓒPOSTECH

물은 가장 중요한 물질이자 인류가 가장 오랜 시간 연구해온 대상 중 하나임에도 여전히 가장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물질로 꼽힌다.


일반적인 액체의 경우 얼기 직전까지 온도가 낮아질수록 무거워지지만, 물은 4℃에서 가장 무거워진다. 만약 그보다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지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겨울에도 강이나 호수의 표면만 얼고 아래쪽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남아 그 속에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물은 왜 이러한 특징을 갖게 됐는지 과학계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물이 고밀도·저밀도 물이라는 두 종류의 액체상으로 공존하며 특정 온도(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구분이 사라져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물이 된다는 가정이다.


학계에서는 이 임계점이 존재한다면 영하 40℃에서 영하 70℃ 사이의 극저온 영역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액체-액체 임계점이 높은 압력의 영하 60도 부근에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였다.


그러나 영하 40℃ 이하로 내려가면 빠르게 얼어버리는 물의 특성 때문에 누구도 실험을 통해 임계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지난 30년간 액체-액체 임계점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어져왔다.


영하 70℃ ‘미동결 물’ 구현…임계점 규명 열쇠 찾아


김경환 포항공대 교수가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밝히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됐다.ⓒ뉴시스

관건은 물이 영하 70℃에서도 얼지 않는 연구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내며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레이저(PAL-XFEL)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했다.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영하 70도까지의 얼지 않은 물을 생성할 수 있고, 100만분의 1초 안에 얼어붙을 수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김경환 교수 연구팀은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가 시작된 2017년 영하45℃ 이하의 ‘얼지 않은’ 물에 대한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 증명했다.


2020년에는 낮은 온도에서 물이 두 가지 구분된 액체상으로 존재함을 규명했다. 김 교수는 “영하 70℃까지 측정 범위를 넓혔더니 물이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 등 2개의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연구는 더 정교해졌다. 김 교수는 “정교하게 온도를 바꿔가며 두 가지 상으로 존재하던 물이 사라지는 시점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가 연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2017년에 영하 43도, 2020년에 영하 70도에서의 관측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영하 60℃서 물 임계점 첫 관측…30년 논쟁 종결


이후 6년에 걸친 추가적인 연구 결과 액체-액체 임계점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할 수 있었다. 실험 끝에 액체-액체 임계점이 영하 60℃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해 태양보다 10경배 더 밝은 빛을 제공하고, 10조분의 1초 만에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 전자 레이저(XFEL)에서 나오는 강력한 X선을 이용, 물분자의 구조를 관찰했다.


그 결과 온도가 낮을 때는 두 종류의 액체 물이 구분되어 존재하지만 영하 60도 이상에서는 두 종류의 물이 더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비정질 얼음을 가열하는 방식으로는 영하 70도까지의 얼지 않은 상태의 물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두 종류의 액체 물이 구분되는 것만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두 종류의 적외선 레이저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영하 60도 부까지 비정질 얼음을 가열하는데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액체-액체 임계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실험으로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물이 갖고 있는 특별한 성질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의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또 액체-액체 임계점의 존재와 그 위치를 고려해 만들어질 더욱 정확한 물의 상태 방정식은 물의 물리적 특성이 관여하는 수많은 기초 및 실용 연구의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물의 특별한 성질과 액체-액체 임계점을 둘러싼 오랜 세월 동안의 학계 논쟁이 마침내 매듭지어지게 됐다”며 “이번 발견은 생명 현상을 비롯해 다양한 자연 현상에서 물이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우수신진연구 및 선도연구센터)과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됐으며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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