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았던 불펜에 강력한 수혈
약점 불펜 오히려 강점으로 변모
'공피고아(功彼顧我)'
당 현종 때 왕적신이 지은 바둑의 위기십결(圍棋十訣)에 세 번째 구절이다,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내 약점을 먼저 파악하라는 의미로 지피지기와 비슷하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인 동시에 상대와의 치열한 수싸움이 경기 내내 연속된다. 바로 벤치 싸움의 백미로 꼽히는 대타 교체와 조밀한 불펜 운용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럴 때 상대 전력에 대한 면밀한 사전분석과 대비가 부족하다면, 경기 후반 분수령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할 경우가 많다. 롯데가 그랬다. 종반 승부의 정밀함이 상위팀에 비해 부족했다.
농구로 치자면 1~3쿼터 내내 리드하고 4쿼터에 역전당하는 경우다. 허약한 불펜과 승리방정식의 부재는 최강 타선인 롯데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SK전에서 유독 그랬다. 시쳇말로 SK 앞에선 롯데는 무늬만 거인일 뿐이었다.
'4-5-6-7-8' 승수 늘어가는 롯데
숫자놀이 같은 롯데의 최근 5년 동안 SK전 승수다.
2007년 SK전에서 4승 14패를 기록한 롯데는 매년 1승씩 추가하며 올 시즌에는 8승1무10패로 마무리했지만, 여전히 천적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2012시즌 롯데가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 SK다.
그런데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작전본부 사령탑이 교체됐다. 롯데를 주눅 들게 하던 벤치에 '야신' 김성근이 아닌 '헐크' 이만수 신임 감독으로 바뀐 것이다. 정교한 스몰볼에 맞선 롯데의 빅볼은 작전구사의 세기(細技)서 밀렸다. 이제는 스몰볼 SK가 아니라 빅볼을 구사하는 SK와 맞붙게 된다.
대신 롯데는 빅볼보다는 스몰볼을 구사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했다. 바로 비룡불펜의 핵인 작은 이승호와 정대현을 영입했기 때문. 인천만 짠물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부산도 짠물야구를 구사할 수 있는 염전을 마련한 셈이다.
왕적신의 위기십결에 나오는 공피고아가 그대로 대입되는 장면이다. 롯데는 먼저 가장 취약했던 부분인 승리방정식의 변수를 파악, 상수화하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 내 약점을 먼저 파악한 뒤 공격할 수 있는 무기 확보에 성공했다.
군산도 항구다
영화제목처럼 목포만 항구가 아니다. 인천도 항구고 부산도 항구다. 야구 연고지로 인천과 부산이 있지만 아마추어 전성시대를 구사하던 고교야구에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군산도 전통이 깊다. 바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대표적인 팜이다.
부산 롯데에 인천 SK 소속 정예병사 두 명이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군산상고 선후배인 정대현과 이승호다. 올 시즌 FA 이적의 실크로드는 한국 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세 항구 도시가 중심에 있다.
SK 전신은 쌍방울 레이더스다. 야신 김성근 감독은 SK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름만 바뀐 친정팀으로 돌아갔던 셈이다. '철인' 최태원(현 LG코치)을 필두로 '어린왕자' 김원형과 박경완, 작은 이승호와 정대현 등이 쌍방울 전사의 후예들이다.
이제는 견고했던 야신 체제가 붕괴되고 SK가 헐크 체제로 변모하면서 구체제의 핵심이었던 쌍방울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알차게 취한 구단이 바로 롯데다.
'현판왕과 율판왕' 양(梁) 감독의 행복한 고민
올 시즌 감독 데뷔전을 롯데에서 치른 양승호 감독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마무리였다. 고원준과 퇴출된 브라이언 코리, 그리고 김사율 등 모든 카드를 꺼내들었다. 결국, 김사율로 후반에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은 아니었다.
정대현과 이승호는 잠수함과 좌완이라는 상반된 유형으로 기존의 우완정통파 김사율과 함께 롯데 승리방정식에 상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일한 좌완 셋업이었던 강영식에 이어 이승호까지 가세, 좌완불펜 플래툰의 폭을 한층 강화시켰다는 점이 눈에 띈다.
양승호 감독 입장에선 경기 후반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아졌다. 정대현과 김사율은 일단 더블 스토퍼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를 치르면서 확실한 마무리를 낙점할 듯하다. 기존 우타자용 불펜요원은 SK로 간 임경완의 역할 이상이 기대된다. 정대현의 영입은 적토마를 얻은 관우의 심정일 게다.
이대호를 놓친 대신 마련한 잉여자금 덕분에 마운드가 호강한다. 점수를 적게 뽑으면 낸 점수라도 지켜야 승산이 높다는 게 양 감독의 판단이다. 이대호 없는 2012 롯데의 승부수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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