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와는 맨유에 오래 머물수록 기존 장점은 희미해지고 맨유 에이스 단점을 보완하는 임무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박지성(32) 때문에 무승부에 그친 게 아니라 ‘덕분에’ 무승부라도 챙겼다.
지난 12일(한국시각) 박지성이 풀타임 활약한 퀸즈파크 레인저스(이하 QPR)가 토트넘과 0-0으로 비기자, 영국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지성 활약에 혹평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를 보는 국내 축구팬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일본조차 영국 언론의 행태가 꼴사납다고 지적할 만큼, 박지성을 향한 혹평세례는 과한 감이 있다. 일각에선 “유럽은 원래 인종차별이 만연한 곳”이라는 험한 말까지 쏟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유니폼을 입은 가가와 신지 또한 최근 들어 영국언론의 날선 비평에 풀이 죽었다.
이 모든 속상한 사태의 근본 배경엔 ‘독이 든 성배’ 맨유가 있다. 잠재력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박지성은 7시즌 동안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즐비한 맨유에서 코칭스태프 주문에 따라 이타적인 움직임을 과시했다. 문제는 헌신적 플레이 '이면'이다. 어느새 습관이 돼버린 지속적인 수비가담은 박지성 근력 수명을 급속도로 단축시켰다. 올 시즌 QPR에서 이도 저도 아닌 포지션에 구속됐다는 잔소리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7년간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긴 쉽지 않다.
공교롭게도 박지성 후광(?)으로 맨유에 입성한 가가와도 모험 대신 안전우선 색깔로 변모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전진패스 비율이 높았지만, 맨유 이적 후 백패스와 횡패스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가가와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진 것은 경쟁이 치열한 ‘우등반 환경’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팀을 이루다 보니 가가와 입지가 좁아졌다. 가가와로선 맞물리는 톱니바퀴 역할에 집중할 뿐이다.
네덜란드 리그 시절 주도적 공격수로 이름을 날린 박지성이 맨유 이적 후 공수균형 맞추는 데 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급 클럽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헌신’을 택했다.
박지성은 자서전에서도 "위대한 조연, 이게 바로 맨유에서 해야 할 몫"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위대한 조연 자체가 유럽 축구계에선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맨유는 빅 클럽인 만큼 팬층도 두껍다. 더 많은 언론, 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조연 박지성을 인정하는 팬들도 많지만, 박지성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게다가 박지성과 가가와는 축구변방 아시아 출신이다.
박지성이 '잉글랜드 선수'였다면 애당초 언성 히어로라는 별명이 붙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박지성이 맨유에서 일군 업적에 비해 대우는 초라했다. 매 시즌이 끝나면 언성 히어로는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병아리 신참들’과 치열한 주전경쟁 펼쳐왔다.
가가와도 비슷한 길을 걸어갈 확률이 높다.
맨유에 오래 머물수록 기존 장점은 희미해지고 맨유 에이스 단점을 보완하는 임무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13일 맨유-리버풀전(2-1 맨유 승)이 대표적인 예다. 동료들은 가가와에게 패스를 꺼렸고, 가가와 또한 공격적인 측면 날개로 나섰음에도 수비가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더 아쉬운 점은 가가와 스스로 현재의 위치에 만족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경력 10년 설기현은 "유럽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시 당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설기현의 주장처럼 유럽축구계에선 참으면 참을수록 존재감만 흐려질 뿐이다.
맨유에 이어 QPR 동료들까지 박지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 박지성의 무한한 잠재력은 바로 '파괴적인 공격본능'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프랑스, 포르투갈, 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 등이 박지성 공격본능에 벌벌 떨었다. 7년간 ‘맨유 독’에 중독됐지만 언제까지 머리카락 잘린 '동네북 삼손'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신감을 기른다면 공격본능도 되찾을 수 있다.
이는 가가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출전할 때마다 잠든 공격본능을 깨워야 한다. 미드필더에서 공을 잡았을 때, ‘주먹 대장’ 웨인 루니(무릎부상)만 찾을게 아니라 실패 후폭풍을 겁내지 않는 스루패스 한 방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리그 시절 박지성과 독일리그 시절 가가와가 그립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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