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에 투영한 기성용 ‘집요한 하이에나’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3.01.18 08:58  수정

결정적 전진패스 위해 집요한 방향전환 패스

철저히 계산된 플레이..영리한 장기 극대화

기성용 스타일 횡패스는 철저히 계산된 하이에나 사냥방식과도 닮았다.

권투의 뼈대이자 꽃은 원투 스트레이트다.

원투로 시작해서 이루어지는 절묘한 공격을 보노라면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71)의 원투 스트레이트는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황홀한 역작이다.

팔 길이가 무려 202cm에 달하는 알리는 경쾌한 발놀림과 함께 매끈한 원투를 뻗는다. 전성기엔 1초에 8번의 주먹을 날릴 정도로 펀치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원투 달인' 알리조차 상대 복서와 대결할 땐 곧바로 주무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상대는 알리의 너무나 유명한 장점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 선수들은 안면 중심의 철옹성 방어를 구축, 알리의 전광석화 같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대비했다.

그래서 알리의 주먹은 먼 길을 돌아갔다. 맞으면 발놀림이 무뎌지는 복부를 공략했고 옆구리도 때렸다. 양 훅으로 관자놀이 등 급소도 노렸다. 알리의 다채로운 페인트와 변칙공격에 상대복서는 안면가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때 알리의 원투 스트레이트가 상대 콧방울에 작렬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패스 매스터' 기성용의 플레이 스타일도 이와 비슷하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스완지시티에서 활약 중인 기성용(24)은 평균 90%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패스 성공률을 자랑한다. 혹자는 “90% 패스성공 대부분이 도전적이지 못한 백패스와 횡패스로 채워졌다”며 영양가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기성용이 횡패스 등에 집중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상대팀은 스완지시티 간판 폭격기 미구엘 미추(리그 21경기 13골)의 골 냄새를 지우기 위해 이중삼중 안방 문을 걸어 잠갔다. 이 탓에 기성용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전진패스 시도를 자제해왔다.

대신 상대팀 중앙밀집 수비진에 혼란을 주기 위해 급격한 방향전환 패스를 고집해왔다. 방향전환 패스의 목적은 상대팀의 점진적 체력고갈에 있다. 상대팀 수비진은 공 이동 경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공간도 메우다 보니 팀 전체적으로 체력소모가 심하다.

기성용은 이 허점을 노렸다. 끊임없는 패스 돌리기로 상대팀의 안면 방어가 허술해졌을 때 스루펀치 한 방을 작렬했다. 올 시즌 기성용의 도움 및 기성용 시발점이 된 스완지시티의 득점기회도 이런 식으로 나왔다.

'덴마크 전설' 미카엘 라우드럽 감독도 기성용에게 끊임없이 패스를 돌리라고 주문한다. 라우드롭은 패스축구 최고봉 FC바르셀로나의 전술을 완성한 요한 크루이프(1988~96 바르사 감독)의 직속 제자다. 라우드럽은 지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바르사 주축멤버로 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도왔다.

스완지시티는 바르사 전술 본질까지 이해한 라우드롭 감독과 바르사 전술에 익숙한 스페인 본토 선수들이 환상궁합을 이룬다. 그리고 올 시즌 스완지시티가 야심차게 영입한 기성용은 라우드롭의 '스완셀로나' 제국 건설의 마침표나 다름없다.

기성용은 바르사 살림꾼 부스케츠의 공 통제력과 레알마드리드 사비 알론소의 롱패스 재능을 '적당히 갖춘 올라운드' 선수다. 횡패스 비율이 높은 기성용 축구방식을 두고 단순히 '소심한 겁쟁이'라고 깎아내려선 안 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기성용 스타일 횡패스는 철저히 계산된 하이에나 사냥방식과도 닮았다. 하이에나의 사냥 특징은 '다수'가 힘을 합해 맹수의 식사를 방해하거나 초식동물을 잡는 식이다. 맹수가 질려 자신이 잡은 고기를 입에서 놓을 때까지 하이에나 무리는 집요한 팀플레이를 펼친다.

스완지시티 '사냥 지휘관' 기성용에게 냉혈한 비판보다 확신에 찬 격려 한 마디가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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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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