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한일전 기대보다 ‘도하참사’ 트라우마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입력 2013.02.24 08:31  수정

WBC 1라운드 전승 목표 ‘자신감’

자만이 가장 큰 적..2006 도하 기억

한국이 지난 WBC에서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미국이나 멕시코, 일본 등을 격파했듯, 한국도 언제든 약팀의 제물이 될 수 있다.

공은 둥글다. 강한 상대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1·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는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사실 이런 성과는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우승후보로 꼽히지는 못했지만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던 미국, 일본, 쿠바 등을 격파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것은 전력이나 기량의 우위라기보다 정신력과 팀워크의 차이였다. 한국은 국제대회만 나서면 태극마크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진다. 강한 상대를 만날수록 더욱 똘똘 뭉치는 단결력과 승부욕도 남다르다. 객관적 전력에서 뒤지는 한국이 믿을 것은 바로 팀워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은 그해 봄에 열린 초대 WBC에서 4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우승 경쟁자로 꼽힌 대만의 전력은 한국보다 한수 아래였고, 일본은 아예 사회인야구팀을 구성해 대회에 나섰다. 반면, 한국은 프로 선수 최정예대표팀을 구성해 금메달을 자신했다.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누가 봐도 우승 0순위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은 둥글었다. 다만, 희생양이 한국이었다. 한국은 대만에 이어 일본에도 어이없이 일격을 당하며 아시안게임 3연패의 꿈이 허무하게 좌절됐다.

결국, 방심이 화를 불렀다. WBC 4강과 병역혜택에 자만했던 스타 선수들은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고, 상대팀에 대한 전력분석도 제대로 돼있지 못했다. 한 수 아래로 꼽힌 대만과 일본에 초반부터 연이어 일격을 당하며 대표팀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뒤늦게 남은 경기를 전승하며 동메달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상처받은 자존심은 회복할 수 없었다. 이 대회는 지금도 ‘도하 참사’로 기억되며 한국야구 사상 최악의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WBC 1라운드에 나서는 한국야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도 바로 도하 참사가 남긴 교훈이다. 한국은 대만, 네덜란드, 호주와 풀리그를 치러 상위 1·2위 팀이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짓는다. 그동안 WBC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린 데다 1라운드 대진표가 발표되면서 다소 안도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한국과 대만의 2라운드행을 예상하고 있다. 선수들의 초점도 이미 일본, 쿠바 등과 붙게 될 2라운드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끝날 때까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이 지난 WBC에서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미국이나 멕시코, 일본 등을 격파했듯, 한국도 언제든 약팀의 제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상대를 만나든 초반에 확실히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덜란드와 호주의 전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그러나 해외파 중에는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들도 상당수 포진해 방심하긴 이르다. 대만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여러 차례 한국의 발목을 잡은 경험이 있는데다 2라운드에서도 만날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국제대회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무조건 “1라운드를 전승으로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다.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주문하는 것도, 찰나의 방심이나 집중력 저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다. 한국야구를 국제무대에 강하게 만든 것은 항상 배고픈 도전자의 입장이라는 헝그리 정신에서 출발했다. 지난 1·2회 WBC에 비해 오히려 전력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표팀으로서는 출발부터 초심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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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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