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위한 고육책' 박 대통령 '국정원' 정면돌파
'민주당이 만든 진흙탕 싸움 끌려가지 않기' 판단
일각에선 "회담 직접 제안보다 물밑접촉했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의 발목잡기와 감사원장 사퇴로 난관에 봉착한 정국의 타개책으로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일찍이 경제 활성화와 민생 살리기를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천명한 만큼, 더는 외부에서 조장한 정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앞으로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책임 있게 산적한 국정현안들을 추진해나가길 바란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민생 안정에 총력을 다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금 국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은 정치권 모두가 산적한 민생을 위해 정쟁을 접고 국민을 위해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민생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로선 다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달 1일 국회 정기회가 시작되지만, 박 대통령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 국빈 방문을 위해 4일부터 11일까지 자리를 비운다. 또 다음달 18일부터 3일 간은 추석 연휴다. 이달 중 야당과 협의를 마치지 못하면 법안 처리는 9월을 넘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은 현재 국정원 사태를 빌미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국회의 입법기능은 사실상 마비됐고, 이에 따라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비롯한 주요 법안들은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당정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해도 민주당에 막혀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국정원장 해임 등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를 수용한다면 국정원을 둘러싼 정쟁 장기화로 민생의제는 더 뒷전으로 떠밀릴 수밖에 없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감을 무릅쓰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국정원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민생회담을 재차 제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나는 야당에서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도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우리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국정원 조직개편을 비롯한 국정원 개혁은 벌써 시작됐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정원을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나는 민생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면서 국정원 사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박 대통령이 앞서 제안했던 5자회담을 다시 제안했다. 이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논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양건 감사원장의 사퇴로 빚어진 인사파문에 대해서도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의 분명한 입장을 전했다. 이날 이 수석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의 임기 보장을 위해 유임을 결정했으나 양 전 원장이 개인적 결정으로 사퇴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 전 원장의 사퇴가 야권에 또 다른 정쟁의 빌미를 제공하자 청와대 측이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교수는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국정원 문제는 야당이 자꾸 물고 늘어지니 정면 돌파 외엔 사실상 답이 없었다”며 “그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만든 진흙탕 싸움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담을 제안한 형식 자체는 최선책이 아니었다는 분석이다. 최진 경기대 교수는 “국정원처럼 극도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이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게 나은데, 야당이 집중 공격을 하다 보니 맞대응을 한 것 같다”며 “정무수석실 등에서 물밑접촉으로 제안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대통령이 직접 5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야당과 단독으로 정치적 대화는 나누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며 “양자회담은 내용을 떠나 여야 간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의 통과의례 같은 것인데, 이를 직접 거부한다는 건 야당과 국회를 무시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10월 재보선을 앞둔 민주당이 장외투쟁의 강도를 더 높일 수도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양 전 원장의 사퇴 이후의 대응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감사원 내부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감사원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만큼, 실효성 있는 후속조치나 명확한 해명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사태의 문제가 뭔지를 밝혀야 하는 거고, 비정상적인 관행이라 해서 ‘전 정권도 다 이랬다’ 그건 맞지 않는 태도”라며 “또 후임 감사원장에 대한 지침도 있어야 한다. 장훈 교수 같은 경우도 본인은 위원직을 고사하지만 청와대는 강행하려 하지 않느냐. 이건 정면 돌파가 아닌 오기”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선 국정원 사태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처신이 대야관계에 대한 장기적 관점에선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생입법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민주당의 국회 복귀인데, 요구사항 수용 없이 무작정 민주당의 협조만 촉구하다보면 결국 야권 전체의 반발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설령 5자회담에 나설 용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어떤 명분이나 실리도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 민주당 내부 분열을 초래하고 지지층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선(先)양자회담 후(後)5자회담을 역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여기에 민주당 내에선 박지원 의원 등 당내 중진 의원들까지 나서서 청와대가 야당을 졸이나 거수기 정도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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