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웰터급 챔피언 생피에르는 14일 캐나다 퀘벡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래 격투계에 몸담아왔고 이제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다"면서 "언젠가 돌아와야겠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 복귀할 것“이라며 잠정은퇴를 선언했다. 무려 6년 동안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있던 생피에르는 스스로 떠났다.
생 피에르보다 더 화려한 시절을 풍미한 표도르는 MM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2000년 링스(Rings)를 통해 데뷔한 이래 10여년 동안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물론 코사카 쯔요시전에서 커팅에 의한 어이없는 패배로 공식전적상 1패가 있긴 하지만, 팬들과 격투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무패로 받아들였다.
그 기간 표도르는 자신의 아성에 도전하는 모든 상대들을 제압했다. 표도르는 자신만 없었다면 최강자의 명성을 얻을 수도 있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린 미르코 크로캅, UFC서 ‘양강’으로 꼽혔던 안드레이 알롭스키-팀 실비아까지 연파했다.
그런 표도르라 MMA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삼보대회서 블라고이 이바노프(27·불가리아)에 패한 결과마저 비중 있게 다뤘다. 그만큼 표도르 이미지는 대중들 사이에서 ‘무적’에 가까웠다.
어쨌든 표도르가 MMA를 상징하는 가장 큰 아이콘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NBA 마이클조던, NHL 웨인 그레츠키, 프로복싱 무하마드 알리, 축구 펠레처럼 종합격투기하면 표도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표도르는 MMA 헤비급 최초의 올라운드 파이터로 불린다. 헤비급치고는 작은 체격(183cm)에도 고른 기량을 선보이며 매우 창의적인 파이팅 스타일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타격-그래플링 포지션 싸움-서브미션 등 하나씩 놓고 보면 최고라 할 수 없지만, 상대의 취약점을 노려 맞춤형 공략법을 들고 나와 수행하는 장면은 감탄사를 뱉게 했다.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운동능력은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헤비급 피이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강한 타격가들과의 스탠딩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벼락같이 상대 품을 파고들어 핸드 스피드를 앞세워 양훅을 휘두르고, 상체 클린치를 잡으면 유도식 테이크다운으로 상대를 눕혔다.
풀스윙으로 큰 궤적을 그리며 휘두르는 이른바 ‘얼음 파운딩’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들어가던 ‘리버스 암바’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다른 선수들보다 밸런스 면에서 월등해 가능했다. 특히, 이 모든 것이 변변한 훈련시설이나 스파링 파트너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 더 놀랍다.
무엇보다 표도르를 높게 평가할만한 것 중 하나는 굉장히 공격적인 파이터였다는 점이다. 차분한 링 밖의 이미지와 달리 경기가 시작되면 누구보다도 화끈한 승부를 벌였다. 간혹 전략적으로 풀어나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링 중앙을 선점하고 상대의 장점과 스타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초반부터 돌격모드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부쉈다.
복싱스타일을 구사하는 선수들처럼 정석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었다. 정교함보다는 스피드를 바탕으로 투박하게 몰아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얼핏 보면 ‘막 던지는’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하지만 결정력이 살아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은퇴하는 순간까지 이어졌고, 기량의 쇠퇴 여부를 떠나 팬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안전하게 승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지루한 전술을 고집하는 ‘수면제’ 조르주 생 피에르 같은 챔피언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말은 표도르에게도 적용됐다. 표도르는 2010년 파브리시오 베우둠(35·브라질)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무너졌다. 언제나 그랬듯 누구라도 꺼리는 베우둠의 가드 안으로 파고들어 파운딩을 퍼부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른 탓인지 트라이앵글 암바에 걸려 길고 긴 연승행진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표도르는 거짓말처럼 패수가 늘어났다. ‘빅풋’ 안토니오 실바와는 힘에서 밀려 패퇴했고, 하위체급에서 활동하던 댄 헨더슨과의 난타전에서 넉아웃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노쇠화로 인한 신체능력의 퇴보, 작은 체격의 한계, 철장무대 부적응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또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늙은 작은 황제가 계속 통치하기에 MMA시장은 너무 많이 변했다. 올라운드 파이터에서 디펜스형 타격가 스타일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 격차를 좁히기에는 모자랐다.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크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리얼 헤비급' 선수들이 군림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동양 링무대 보다 서양 철장게임을 더 높이 샀던 일부 팬들은 표도르 노쇠화를 무시한 채 “본래 전성기 기량이다. 더 강한 선수들이 나타나면서 실력이 드러난 것”이라며 조롱하기도. 하지만 표도르보다 아래에 위치했던 호드리고 노게이라-조쉬 바넷 등이 한참 정상권에서 젊은 강자들에게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러한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스포츠는 역사가 거듭됨에 따라 시장자체가 커지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NBA팬들과 축구팬들은 수십 년 전 활약했던 윌트 체임벌린과 펠레를 현시대와 같은 잣대를 들이대 평가절하 하지 않는다. 정상급에 있던 선수들은 그들만의 확실한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존재했기에 발전한 지금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표도르는 MMA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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