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복귀해 남자 1000m에서 금메달
귀화 배경에 빙상연맹과 갈등 논란 불거져
러시아 쇼트트랙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을 안긴 안현수(29·빅토르 안)가 방황하는 한국 쇼트트랙에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안현수는 15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반면, 함께 레이스를 펼친 신다운은 아쉽게 실격처리 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안현수는 우승을 확정짓자 경기장 한 가운데로 와 무릎을 꿇은 뒤 빙판에 입을 맞췄다. 지난 8년간의 설움과 고통이 일순간에 날아갔다. 그리고는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안현수는 시상식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사실 첫날 500m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에도 눈물이 났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꼭 금메달 따고 이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며 "8년 동안 이거(금메달) 하나 보고 너무 힘들게 했던 생각이 났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정말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라고 말했다.
안현수의 눈물은 한국 쇼트트랙을 적셔주고 있다. 특히 온갖 구설에 시달리는 한국 빙상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 충분하다.
안현수와 과거
안현수가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이스를 복기해보자. 그가 입고 있는 유니폼은 잠시 지워도 좋다. 안현수는 레이스 초반 선두권을 형성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고 중후반 이후부터는 속도를 바짝 올려 1위로 치고나간 뒤 그대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동료인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와의 호흡도 환상적이었다. 두 선수는 사전 교감한 그대로 선두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다른 선수들이 치고 나가지 못하게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었다. 신다운 등이 코너에서 애를 먹은 이유다.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를 호령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전술을 보는 듯 했다. 당시에는 2명 이상 결승 진출이 잦았던 시기로 일단 레이스가 펼쳐지면 금과 은메달은 물론 금, 은, 동을 싹쓸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쇼트트랙을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이라면 러시아의 전략이 결코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안현수와 현재
한국은 쇼트트랙이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매 대회 금메달을 수확하고 있다. 1992년 2개를 시작으로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는 4개, 1998년 나가노 3개, 2002년 솔트레이크 2개, 2006년 토리노 6개, 2010년 밴쿠버에서는 2개를 땄다. 역대 올림픽에서 19개의 금메달을 휩쓴 한국은 이 부문 2위인 중국과 캐나다(이상 8개)의 금 개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하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파벌문제와 짬짜미 의혹 등 갖가지 악재가 대한 빙상연맹을 덮쳤다.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약진으로 더 이상 쇼트트랙 최강국이란 타이틀을 잃은 지도 오래다.
결국 곪았던 상처가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터진 모습이다. 한국쇼트트랙은 이번 올림픽에서 남녀 합쳐 벌써 4개 종목이 끝났는데도 아직 금메달이 제로다. 특히 안현수는 러시아 대표팀 소속으로 새로운 조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 한국에 비수를 꽂았다. 집안에서 시끄러우니 밖에 나가 일이 잘 될 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