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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알제리전 승리의 키 '깡 아닌 진짜 정신력'


입력 2014.06.22 00:06 수정 2014.06.22 08:13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신체적 한계 극복하는 정신력 보다 개인기량 실전서 온전히 펼치는 집중력이 진정한 정신력

알제리전 앞두고 박주영-박주호 기용 여부보다 멘탈 매니지먼트에 대한 고민 앞서야

한국축구는 알제리를 상대로 16강 진출이 걸린 절대적 한판을 준비 중이다. ⓒ 게티이미지

러시아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점1을 따낸 홍명보호의 경기력은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분명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출전했던 1954 스위스월드컵은 논외로 하고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1998 프랑스월드컵까지 네 차례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개막 전까지는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이런저런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 수준의 축구와의 분명한 수준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대회를 마치면 대표팀에게 따라붙는 평가 가운데 단골 레퍼토리는 ‘정보력 부재’ 내지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을 전후로 한국 축구는 확실히 달라졌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대회 개막 직전 세계적인 강호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결과에 관계없이 세계 수준의 축구에 대한 적응력이 생겼고, 그 결과 본선에서 세계 수준의 대표팀들과 맞서 주눅 들지 않고 준비한 플레이를 정상적으로 펼쳤다.

월드컵 4강 진출이 가능했던 선수 개인의 기량이나 팀 전체적인 기량 향상이 이후 한국 축구의 수준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됐을 수는 있지만 그 이전에 세계적인 강호들과 맞서 심리적인 위축 없이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된 대표선수들의 멘탈 매니지먼트는 한국 축구가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주된 요소로 작용했다.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0-4 대패한 대표팀이 그로부터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월드컵 무대에서 유럽의 강호 러시아를 상대로 내용 면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승점을 얻었던 데는 전술적으로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정신 무장을 새롭게 할 수 있던 것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홍명보호는 지금 알제리를 상대로 16강 진출이 걸린 절대적 한판을 준비 중이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조편성 당시 한국의 확실한 1승 상대로 지목됐던 알제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표팀에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라는 평가가 많아졌다.

알제리와 같은 아프리카팀 튀니지,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 5골이나 허용하며 2패를 당한 대표팀으로서는 아프리카팀에 대해 막연한 찜찜함을 안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두 대표팀과의 평가전 내용을 되짚어보면 홍명보호가 내용 보다는 정신력 싸움에서 졌다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력은 과거 한국 축구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던 정신력과는 차이가 있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4골차 완패를 당한 그 이튿날인 지난 11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에서 마지막 훈련을 끝낸 뒤 취재진과 만나 "축구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데 대체 정신력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예전에는 정신력이 한국 선수들의 특징으로 손꼽혔지만 먼저 실점하고 나서 정신력을 통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나 역시 그런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전에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지난 두 차례 평가전에서 볼 수 있듯 좋은 경기를 펼치다가 실수로 실점하는 부분을 고치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결국, 선수들의 방심을 경계하고 자신의 플레이와 팀 플레이에 대한 집중력을 강조한 말이었다.

홍 감독의 이와 같은 언급은 굳이 따지자면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를 상대할 때보다는 우리 대표팀이 막연한 자신감을 지닌 아프리카 팀을 상대할 때 더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전에서 맞붙었던 KBS 이영표 축구해설위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위원은 지난 2012년 5월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2002 한일월드컵이)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오해는 ‘한국축구는 유럽축구보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흔히 상대를 거칠게 다루거나 부상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는 것이 정신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멘탈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멘탈, 즉 정신력에 대해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 섰을 때나 혹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앞두고 밀려오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며 “약한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경기장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또 졌을 때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묵묵히 이겨내는 것, 이겼을 때 쏟아지는 칭찬을 가려 들을 줄 아는 것도 모두 멘탈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또 “유럽축구의 환상적인 플레이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바로 강력한 멘탈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하나같이 멘탈을 언급하는 이유도 박빙의 경기에서 경기 결과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은 기술이나 전술이 아니라 바로 멘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한국 축구가 지닌 정신력이 소위 ‘깡’으로 대변되는 정신력이요, 육체적인 한계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이었다면 오늘날 한국 선수들이 가져야 할 정신력은 연습 과정에서 익힌 전술과 개인기량을 실전에서 온전히 펼쳐 보일 수 있는 평정심과 집중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이나 이영표 위원 모두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신무장 내지 멘탈 매니지먼트의 개념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결국, 알제리전을 준비하는 대표팀에 러시아전에서 침묵했던 박주영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계속 선발 기용해야 하는지, 윤석영 대신 박주호를 왼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해야 하는지, 또는 4-3-3 포메이션으로 나설지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설지, H조 16강 경우의 수 등 전술적인 형태나 선수 기용의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알제리전을 치르는 도중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 ‘진짜 정신력’을 갖는 것이 알제리전에서 홍명보호의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튀니지전에서 어떤 과정으로 실점을 했는지, 숱한 득점 기회를 날려버린 장면, 그리고 가나전에서 대패의 빌미가 된 실책성 플레이는 분명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방심 내지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제리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한다.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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