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매형 "군 가혹행위, 무기징역 등 중형으로..."
군 인권문제 긴급토론회서 군 복무중 가혹행위로 숨진 피해자 가족들 증언
“구타와 가혹행위 방지를 위해선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와 군인권법, 옴부즈만 제도도 좋으나, 개인적인 소견으론 구타나 가혹행위가 발생했을 때 구체적인 형량이 정해지면 실효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20~30년, 무기징역 수준의 중형을 때리면 형벌이 무서워서라도 군대 내 폭력이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4월 집단구타로 숨진 28사단 윤모 일병 매형의 목소리에는 차분하면서도 깊은 분노가 묻어났다. 윤 일병의 매형은 “예를 들어 ‘윤 일병 사건 방지법’ 등을 만들어 형량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또)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보상 기준도 구체적으로 정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3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군인권센터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인권문제 긴급토론회’에는 윤 일병을 비롯해 군 복무 중 가혹행위로 숨지거나 장애를 앓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군 사법체계 개혁을 촉구했다.
먼저 지난해 10월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모 대위의 고모부는 “군과 관련 없는 사람, 제3자 입장에서 객관성을 갖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사건을 맡았으면 좋겠다”며 “죄 지은 사람은 떳떳하게 죄값을 받고,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 봄에 결혼이 예정돼 있었던 오 대위는 지속적으로 상관인 노모 소령의 성추행에 시달라다 지난해 10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노 소령은 지난 3월 군사재판 1심 판결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고, 이달 중 예정된 2심 재판은 다른 재판에 밀려 연기된 상황이다.
오 대위의 고모부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낀 군사재판의 문제점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면서 “법률과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는 재판장이 주도하면서, (또) 군 내에서 사단장의 지시를 받다보니 군이 제대로 잘못된 사고를 파헤칠 수 없고, 제대로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지적했다.
가혹행위와 별개로 군대 내 기본권 유린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지난 2011년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와 지난해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누나는 숨진 자식과 동생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 상병의 누나는 “중대장이란 사람한테 우리 막내가 눈 밖에 났다. 아프다고 병원 보내달라고 했는데 두통약만 주고, 잡혀있는 휴가까지 미뤄가면서 파견근무 시키고, 인분을 치우게 하고, 그 아프다는 애한테...”라며 “한 상관 때문에 우리 애는 치료받지 못하고 그 큰 고통을 감당해야 해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가해자가 두 명인데, 한 명은 맨 정신으로는 올 자신이 없었는지 술을 먹고 우리 집에 찾아왔더라. 칼을 찾더니 자기 같은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남은 한 사람은 소령으로 진급해 떳떳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사람이 제2의 성민이를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중이염을 앓고 있었음에도 ‘꾀병’으로 매도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2011년 자살을 택한 정희택 훈련병의 어머니는 “본인이 원하는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다면, 본인이 납득할만한 조치만 해줬다면 그렇게 답답해하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윤 일병과 비슷한 형태의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임모 상병의 어머니도 참석해 군의 수사 과정에 대해 울분을 토해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따르면 임 상병은 군생활 중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으나, 가해자 3명 중 1명만 폭행으로 기소되고, 나머지 2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현병대의 조사 과정도 문제였다. 수사관들은 임 상병이 입원 중인 병원에 찾아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탐지기를 가져오겠다”. “무고죄로 잡혀갈 수도 있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내뱉었다. 임 상병의 어머니는 “가해자는 우리보다 편하다. 다 빠져나가지 않았느냐”며 “그것도 피해자의 고통이다”라고 토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군대 내 인권유린과 가혹행위에 대한 대안으로 군감독관, 이른바 군 옴부즈만 제도를 제안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부실한 조직과 예산을 가진 기구야말로 인권만 이상적으로 강조하는 얼치기 통제기관이 될 가능성인 높다”며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갖춘 안정된 전문조직이 안정적으로 상시 운영될 때 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군에서 수용 가능한 양질의 자문과 권고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임태훈 소장도 국방부가 “병사들의 권리의식과 연계된 문제로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제한받는 권리는 무엇인지, 인권을 침해받을 경우 어디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며 “이런 조건 하에서는 인권교육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이어 “병사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군인권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하며, 국방감독관 제도 또한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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