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입은 남근이 여자성황신을 찾아가...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입력 2014.11.01 11:35  수정 2014.11.01 11:39

치마 입은 남근이 여자성황신을 찾아가...

“옛날 마을앞산에 백호가 살았답니다. 숫성황당에는 성황신을 모신 곳으로 목판신위만 있었는데, 20년 전 기와집으로 고치면서 남녀초상화와 호랑이그림도 그때 그렸습니다. 백호는 신령을 상징하는 동물로 묘사되지요.”

백도마을 김오실 총무(59)가 성황당을 안내하면서 마을과 성황신의 유래를 설명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3일에 숫성황당과 암성황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오리나무를 깎아 다듬고 치마까지 입혀 암성황에게 남근을 받칩니다. 이런 의식은 우리나라에서 백도마을이 유일합니다.”

지난 10월 하순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해안가,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공개되지 않았던 이들 성황에 기자가 취재에 나섰다.

치마입은 남근이 암성황신을 찾았다ⓒ최진연 기자

백도마을의 성황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없다. 숫성황당이 위치한 산 아래는 넓은 평탄지가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98년에 발굴조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융기문, 손톱무늬 회갈색 토기편 등 많은 유물이 쏟아지자 신석기시대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확인됐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성황제의 유래는 아득할 것으로 추정된다.

성황제는 마을에서 경비를 마련하고, 섣달에 7명의 제관을 선임한다. 제물은 예전에는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돼지로 쓰고 있다. 어물은 앞 바다에서 나오는 문어, 열기, 오징어를 쓴다. 집집마다 호주의 이름과 생기를 써서 소지를 올려준다.

남근은 제관 중에서 한 사람이 깎는데, 남근 길이는 약 30cm, 둘레가 15㎝정도이며 오리나무로 3개를 깎는다. 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된다. 암성황제는 새벽 4시경 올린다. 이때 이웃에 있는 숫성황당에서도 함께 지낸다. 3개의 남근가운데 가장 큰 남근에 치마를 입혀 암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는데, 구멍이 한 번에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숫성황신에는 남녀초상화와 백호가 그려져 있다ⓒ최진연 기자

암성황은 바다와 닿아 있는 큰 퇴적암이다. 암벽내부는 풍화로 인해 30여 개의 자연구멍이 있으며, 바닥은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전설에는 암성황신은 시집을 못간 여자가 바다에 빠져 죽어 그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근봉헌은 마을의 한 어부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홧김에 암성황당에 가서 욕설을 퍼붓고 바다로 나갔더니 만선이 됐다고 전한다. 그 뒤 그는 남몰래 암성황신을 위해 목각남근을 바치자 늘 풍어가 되었으며, 이후 주민들도 동참해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암성황신 앞에 숫성황신이 있는 산이 보인다ⓒ최진연 기자

백도마을의 지명은 해안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는 바다에 갈매기 배설물로 인해 섬 전체가 희게 보여 백도로 부르게 됐다. 30년전만 해도 배설물을 거름으로 쓰기위해 주민들이 섬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마을은 현재 100여 가구가 살고 있지만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1만가구 이상이 거주했으며 해안에는 항구와 큰 규모의 염전이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신석기시대의 집터와 덧무늬토기, 옥 귀걸이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된 지역을 나라에서 국가사적 426호로 지정했고, 성황제와 함께 역사관광지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도 아직까지 복원 안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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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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