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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제정부터 폐지까지…62년 아닌 110년의 역사


입력 2015.02.26 15:46 수정 2015.02.26 17:35        윤수경 인턴기자

1905년 대한제국 형법대전부터 2015년 2월 26일 이르는 장구한 세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간통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선 뒤 자리에 앉아 있다. 헌재는 이날 간통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41조가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내놨다. ⓒ연합뉴스

간통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6일 위헌을 선고했다.

이날 헌재는 간통죄 처벌 조항인 형법 241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간통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대한제국 형법대전이 공포되면서 간통죄는 '징역형'으로 규정돼 형사법으로 다뤄졌다.

대한제국 형법에서 규정하는 간통죄는 유부녀가 간통한 경우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그와 상간한 사람을 6월 이상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벌금형은 없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였던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에서도 유부녀의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이후 간통죄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첫번째 고비를 맞았다. 1953년 법전편찬위원회가 당시 일본 형법에 남아있는 간통죄를 선구적으로 폐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통죄가 포함된 초안을 국회로 넘겼으며, 이 안은 재석원수 110명 중 과반수에서 단 한 표가 많은 57표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로써 1953년부터 간통죄는 형법 241조에 규정돼 62년 동안 이어져 오게 되었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으며, 함께 간통을 저지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도록 했다. 대한제국 형법과의 차이점은 남녀평등처벌주의에 따라 부인의 간통뿐 아니라 남편의 간통도 처벌하도록 '쌍벌죄'로 정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간통죄는 형법에 제정된 이후 끊임없이 존치론과 폐지론에 휘말려 왔다.

1990년 9월 10일, 간통죄에 대한 첫 번째 위헌 심판에서 1기 헌재는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에 대한 다수 의견은 "선량한 성도덕,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 유지, 가족생활 보장,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 수호, 사회적 해악 사전예방 등을 위해 간통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반대 의견을 냈던 한병채 이시윤 전 재판관은 "간통죄에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둔 것은 과도한 처벌이고, 간통죄를 통해 보호하려는 공공의 이익보다 제한되는 기본권이 더 크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김양균 전 재판관은 "사생활 자유라는 기분권을 침해하거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간통죄는 원칙적으로 위헌"이라고 반대했다.

이로부터 약 3년 뒤인 1993년 3월 11일, 간통죄에 대한 두 번째 위헌 심판이 이루어졌다.

당시 헌재는 "이미 1990년 선고한 사건에서 간통죄가 합헌이라고 판시했는 바 이를 다르게 판단해야 할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유지했다.

간통죄에 대한 세 번째 심판이 이루어진 것은 2001년 10월 25일이었다. 3기 헌재는 권성 전 재판관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들이 합헌 의견을 내면서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권성 전 재판관은 "유부녀의 간통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형벌로 다스려야 할 일이 아니다"며 "간통죄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위헌 규정"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또한 3기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성 개방에 대한 사회적 수용 분위기를 감안해 "앞으로 간통죄 폐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까지는 간통죄에 대한 합헌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처음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아진 것은 2008년 10월 30일 4기 헌재에서였다. 4기 헌재는 위헌 4명, 헌법불합치 1명, 합헌 4명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강국 이공현 조대현 전 재판관은 "간통죄가 과잉금지 원치겡 반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형만 규정한 것도 과중하지 않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김종대 이동흡 목영준 전 재판관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제한하는 간통죄는 위헌"이라는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또한 처음으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김희옥 전 재판관은 "간통죄는 도덕적 비난에 그칠 행위에까지 형벌을 부과해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15년 2월 26일 간통죄에 대한 다섯 번째 심판에서 헌재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서기석 재판관 등은 "간통죄는 선량한 성풍속과 일부일처제를 보호하고 부부간 정조의무를 지키게 하기 위한 것으로써 헌법상 보장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이어 "국민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을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지에 대해서는 국민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은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일부일처제를 훼손하고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한다는 데 의문이 강하게 든다"며 "간통은 사회질서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우리의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로써 간통죄는 다섯 차례에 걸친 심판 끝에 1905년 대한제국 형법에서 규정된지 110년 만이며, 1953년 대한민국 형법으로 제정된지 62년 만에 폐지됐다.

윤수경 기자 (takami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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