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했던 결과물이 희미해지며 과거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반면 꾸준히 한 길을 간 사람이 마침내 그 노력을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 인생이라는 소설을 끝까지 봐야만 하는 이유다.
축구계에서 '홍명보'란 단어는 조심스러운 키워드가 됐다. 앞서 거론한 예들 중 첫 번째 사례에 가까워 보인다.
그가 2002 한일월드컵 스페인과 8강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차 넣었을 때 팬들은 환호했다. 늘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홍명보가 웃었을 때 팬들은 더 큰 희열을 맛봤다. 1990년대부터 한국 축구의 흥망성쇠 속 한가운데 있던 그가 마침내 '4강 신화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은 이런 모든 것을 앗아갔다.
준비 과정부터 나온 파열음은 끝내 한국 축구를 1990년대로 돌려버렸다. 감독 홍명보가 세운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영광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결국, 대한축구협회의 '홍명보 지키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독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땅 투기' 논란까지 겹쳐지자 그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1년 정도가 흘렀지만 팬들의 충격은 여전하다.
최근 '이사장' 홍명보의 다양한 활동이 알려졌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한국 축구를 위해서든 홍명보 자신의 이사장 활동을 위해서든 그 동기 자체를 떠나 이러한 활동은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하다. 수비수 유망주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 한다는 의지도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축구인 홍명보를 향해 고개를 젓고 있다.
한 번 실패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마녀사냥'으로 볼 수도 있다.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준비 기간이 부족했던 점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가 이룬 업적과 성과보다 희미한 흠집을 갖고 팬들이 과하게 반응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감독으로서 가져온 실망스러운 결과보다는 오히려 과정에 대한 비판이 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한국 사회를 삐뚤게 관통하고 있는 학연과 지연이라는 씁쓸한 단어를 팬들은 머릿속에 띄운다.
하지만 홍명보라는 인물 자체가 이대로 한국 축구를 떠날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여전히 축구인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축구인 중 경험과 능력에서 제일 앞줄에 있을 사람이다.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지만 언젠간 외부 활동을 떠나 지도자나 행정가로 팬들 앞에 나타날 게 분명하다.
이런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다시 한 번 감독으로 나타나는 게 바른 길이다. 국가대표팀을 맡을 때부터 불거진 지도자 자격증 논란과 그에 따른 실패를 만회하려면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 늘 그랬듯 정면 돌파해야 한다. 감독으로 먼저 팬들에게 인정받아야 그 다음의 것들이 풀릴 수 있다.
거창할 것도 없다. 명문 구단이 아니어도 좋다. K리그 하위권 팀이든 주목받지 못하는 해외 리그든 팀을 맡아서 팬들에게 '감독 홍명보'로서의 입지를 재차 다지면 된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그와 함께 베테랑 역할을 했던 포항 황선홍 감독의 경우를 보면 된다. 차근차근 과정을 밟은 황 감독은 어느새 젊은 감독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여전히 '홍명보'라는 단어는 뉴스의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과 합리적인 과정을 보여준다면 축구계는 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를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한국 축구가 가진 인재풀이 여전히 좁으며 1990 이탈리아월드컵부터 뛴 그의 견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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