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드러난 정치력 부재의 민낯
<굿소사이어티 칼럼>사건만 터지면 외부세력 개입 정치화 투쟁
지난 2015년 9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특별수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자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진행해야 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불간섭의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발표에 대하여 예상대로 야당과 일부 반대 언론들은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꼬인 정국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협상의 여지를 좁혀버렸다는 비판이다. 민주화 30년에도 비타협과 혼돈과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한국정치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최근 세월호 정국이다.
단순한 해상 재난사고가 정치적 소용돌이로 번진 과정
세월호 사건의 사태가 전개되면서 한편으론 세월호 유족회 내부에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인 세월호 선주 유병언의 불법적이며 부패한 기업경영의 행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해수부와 해경의 무능과 부패 또한 심각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민심이 동요했다. 그러던 중 유족들의 단식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단식자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여당과 야당에게 훈계하는 전에 없던 상황까지 다다랐다.
경제전문가들은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 한국의 경제가 세계적 경기불황 상태에서 재부상하려던 찰나에 불어 닥친 강력한 태풍이 바로 세월호 사태라고 한다. 혹자는 세월호 사건은 재난사고 분야에서 가장 큰 충격으로, 즉 쓰나미 같이 한국사회를 강타하였다고 평가한다. 이제 한국사회의 기초를 다지면서, 재난과 해상업무의 분야에 근본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되고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 위에서 최첨단의 과학적, 합리적 체제가 도입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동안 여러 달 단식 중이던 유가족들에게 수년 전 반정부투쟁의 선봉에 섰던 일부 강경시민단체 지도자 같은 ‘외부세력’이 파고들었다. 최근에 일부 여론과 야당의원들의 정부비판의 논조가 도를 넘어선 경우가 반복됐다. 그건 과연 의회민주정치의 공동가치를 공유하는 양식 있는 자유민주사회의 엘리트들이 할 수 있는 말인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세월호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이 처리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한국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점이다. 단순한 해양업체의 재난사건이 아니라 각종 구조적 모순과 부패를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인 흉물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차제에 한국사회의 문제를 미시적이고 지엽적으로만 다루지 말고 근본적으로 성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극복할 때 국제사회 앞에 다시 인정을 받을 것
즉 21세기 한국은 세월호를 극복해야만 국제사회와 국민들 앞에서 다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 산업화, 세계화로 치닫는 동안 가려져 일반대중에게는 인식되지 못하였지만 산그늘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부패 기업의 괴물이 미래의 생명들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문제의 세월호를 운영해온 청해진 선박회사가 있었다. 구원파 종교지도자 유병언 씨와 지지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불법행위들을 눈감아준 해양수산 분야의 관피아 그룹이 있었다.
아예 운항할 수 없는 상태의 위법적 개조가 이루어졌던 배가 수년간 독점적으로 운항해 왔던 것이야말로 정말 미스터리라는 점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형 압축고속개발시대의 그늘의 하나다. 1970년대에 고속성장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들 높은 이윤과 성공의 평가가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게 마련이었다.
국내 해양관광교통 분야가 바로 그러한 분야였고, 이윤은 낮고 일은 어려우니 정부의 지원과 보조가 필요했다. 국내 해상여객 사업은 즉 비인기종목이며 비자생적 영역에서 위태롭게 운영되어왔고, 그런 영역에서 발생한 대형사고가 끝내 한국사회를 강타한 것이다.
세월호 발발 수개월이 된 시점에서 이 사건을 둘러싸고 우리사회가 또 다시 둘로 갈라서는 불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유족회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의 구체적 요구조건을 놓고서 갈등 대립을 거듭해 국회의 정상적 기능조차 일체 마비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조성된 것이다.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한국사회가 더욱 분열적으로 갈등을 보이는 것은 왜인가?
기초가 부실한 한국사회 환골탈태의 계기로 만들자
이는 최근까지 진행되어 왔던 정치, 사회의 분열구조가 가세한 결과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되었건만 우리의 정치엘리트들은 진보 보수로 분열해 사생결단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하며 국회에서 여야는 신속히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해야 한다. 유족들을 볼모로 해서 국정을 마비시키며 비타협적 자세를 보이는 것에 국민들의 인내는 거의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압축고도성장 사회로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급진적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각종 단체와 세대, 개인들의 갈등과 이견의 골은 깊어졌다. 그렇지만 정치권까지도 반목과 이견과 비타협으로만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이들은 바로 이런 갈등을 해결해야 할 사명이 부여된 대의민주제 정치인들 아닌가? 특히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학생들의 희생을 진정 애도한다면 바로 자라나는 새 세대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도록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세월호 사태로 절망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민족의 저력이 고난을 맞을 때에 그것을 돌파해 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을 성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정부의 최대의 위기가 바로 세월호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의 정치사회가 완전히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발전을 위해 일부 소수 혜택 받은 자들이 앞에 서고 다수의 대중들이 그를 따르는 위계적 구조적 상황에서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자들, 즉 사회적, 지역적, 계층적 약자들이 불이익과 차별에 희생되어야 했던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통해 이제 한국민의 가치와 의식은 물질적 가치나 물량적 지표로 피상적으로 나타나는 개발연대시대의 수준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지금은 누구를 공격하기보다 먼저 과학적, 체계적 수사가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힘쓸 때다. 그리고 유병언의 주변인물 등 대참사 책임자들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은 민주적이며 과학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통하여 하며 조급하게 일부 집단들의 주장이나 편견에 그 조사와 판단 과정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현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근본 원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진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든지 책임이 있는 자들은 조사과정에서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누구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여야 등 정치권에서 먼저 특별위원회의 조사활동의 개시를 준비하여야 하고 시민과 언론은 그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하여야 한다. 역설이지만 세월호 사건은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글/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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