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돌파 ''연평해전'에 열광하는 20대의 심리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5.07.13 09:43  수정 2015.07.13 09:50

<하재근의 닭치고tv>거대 국가시스템에 외면당해 죽어간 동년배에 공감대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흥행 여부가 불투명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연평해전>이 깜짝 흥행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3주차에 벌써 430만 관객을 돌파해 2015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최근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유독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터미네이터' 등 헐리우드 기대작조차 제친 것이 인상적이다.

'연평해전'의 흥행성공을 전망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 작품의 북한관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북한은 ‘순수한 악’이며 박멸해야 할 위협세력으로 그려질 뿐이다. 이런 관점의 북한 묘사는 90년대 전에 주로 나타났던 ‘올드’한 방식으로, 90년대 이후 젊은이들은 북한을 함께 평화를 이루어나가야 할 동족으로 보는 영화에 지지를 보냈었다.

그러니 복고적 북한관이 깔려있는 영화의 흥행이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고, 또 군대 얘기라는 점도 문제였다. 영화 흥행은 젊은 여자 관객들이 상당 부분 좌우하는데,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과연 선호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평해전'은 제작이 중단되고 투자배급사가 바뀔 정도로 난항을 겪었다. 제작비가 제대로 조달이 안 돼 대국민 크라우드 편딩을 통해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했는데, 막상 개봉한 후에는 관객들이 밀려들었다.

놀라운 건 젊은이들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24일부터 28일 기준으로 20대 관객 비율이 52.4%, 30대 비율이 22.2%로 압도적이다. 50대 이상은 7.6%에 불과하다. '명량'의 20대 관객 비중은 30.2%, '국제시장'은 32.1%, '변호인'은 31.9%였다. 더욱 놀라운 건 여성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점이다. 여성 관객 비율이 61.36%에 달했다.

이런 반응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면 진작 제작비가 모여 오래전에 완성됐을 것이다. 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이 일반적인 통례를 벗어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분명히 2000년대 초라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북한관이 달라졌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과거엔 북한을 함께 평화를 회복할 형제자매로 인식했었다. 그전에 북한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고 북한지도층이 괴물로만 표현된 교육을 받았었는데, 그에 대한 반발심리도 있었다. 대중문화도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고취하는 작품들만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또 다른 시각의 작품에 열광했다.

그랬던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바뀌었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커진 것이다. 이것은 안철수 돌풍에 이미 반영되었었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 당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방했는데 그게 젊은이들한테 통했다. 그때 안철수 돌풍을 만들었던 청년정서가 이번 '연평해전'의 깜짝 흥행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청년세대는 불안하다. 이럴 땐 점점 타자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고 대신에 분노가 커진다. 특히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에겐 초강력 응징을 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다. 북한을 우리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동족으로 보는 시각도 약해졌다. 불안 사회에서 못 살고 귀찮게 하는 이웃은 경멸 대상일 뿐이다.

'연평해전'에 그려진 것은 거대 국가시스템에 외면당한 채 죽어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 점이 젊은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 여자들이 남자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을 느끼던 남자들이 <연평해전>을 통해 한껏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바로 남자가 여자들을 지켜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군대 얘기 싫어하던 여자관객들은 왜 '연평해전'을 지지한 것일까? '연평해전'은 군대 이야기 이전에 꽃미남 군단의 이야기이며 지켜주는 이야기다. 새하얀 해군제복이 그야말로 스타일리쉬하게 표현된다. 장병들은 늠름하다. 그런 장병들이 부인, 어머니, 애인 등을 지켜준다. 이렇게 ‘지켜주는 꽃미남’ 이야기에 여자들은 열광한다.

인기 멜로 드라마는 거의 다 지켜주는 꽃미남 스토리라고 보면 된다. 그런 드라마에선 1대1로 직접 만나 여주인공을 콕 찍어 지켜준다면, '연평해전'에선 집단적인 차원으로 확장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원래 젊은 관객들은 한국 영화에서 스케일이 큰 액션이 나왔을 때 지지를 보냈었다. 한국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답답한 느낌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대형 액션이 등장하면 관객의 관심이 크게 쏠린다. 물론 '연평해전'의 액션이 헐리우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해상 전투신이 등장한다는 건 분명하다.

똑같은 액션이어도 한국 영화의 액션에 더 큰 반향이 나타나는 건 그것이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항공모함이 침몰해도 우리에겐 그저 스펙터클일 뿐이지만, 우리 영화에선 고속정 한 척이 공격당해도 울분이 북받친다. 이련 효과 때문에 '연평해전'의 액션 장면은 실제보다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배경에서 젊은층 사이에 깜짝 흥행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충무로에선 북한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수정주의적 관점’이 대세로 통용됐다. '연평해전'은 전통적 시각을 다시 부활시켰고 20대의 지지를 받았다. 앞으로 관객정서가 또 어떻게 변할지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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