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경찰 아저씨가 나의 힘" 이구동성 이유는
탈북민 정착에 가장 큰 도움은 지역사회 빠삭한 '신변보호관'
일부 탈북자들, 신변보호관의 '마크'에 "사생활 침해"라며 '민감'
상당수의 탈북자들은 초기 남한 정착과정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신변보호관”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탈북자들은 본격적인 남한 정착에 앞서 12주 간 ‘남한공부’를 하는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배출된다. 이후부터는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과 하나센터 등의 기관이 탈북자들의 정착 지원을 도맡기 때문에 이들의 답변은 더욱 예상밖이다.
2010년께 탈북, 현재는 울산에 거주중인 탈북자 A씨는 지난 22일 ‘데일리안’에 “솔직히 신변보호관들이 경찰로서 업무외의 정착 지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준다”면서 “탈북자들은 법을 모르는데, 형사들이 일일이 데리고 다니면서 끝까지 다 알려주고 돈이 없을 때는 본인 돈까지 꺼내서 쥐어준다”고 말했다. A씨는 신변보호관에 대해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경찰이 탈북민 정착에 도움 줄 수 있는 이유? 지역사회 '빠삭'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에 따르면 신변보호관들은 남북하나재단이나 하나센터에서 챙기지 못한 정착 관련 부분에 대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행정시스템상 신변보호관들은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 하나원에서 갓 퇴소한 탈북자가 오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쌓기 쉽다.
특히 경찰은 지역사회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을뿐더러 관할 지역에 대한 정보, 분위기 등 여러 사안에 대해 빠삭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본보에 “경찰들이 탈북자와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잘 좀 부탁한다’라고 하는 것과 민간인이 탈북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영향력 자체가 다르다”면서 “내 경우,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도 비용도 저렴하게 배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일자리를 구할 때도 경찰들의 경우 지역사회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일할 만한 곳을 알선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자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붙어있는 신변보호관들은 정보보안과 보안계 경찰들을 말한다. 이들의 본 업무는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보호와 간첩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 업무 외의 탈북자 정착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취업알선, 진로상담, 학업고민, 장학금, 장기적으로 탈북자를 지원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과의 연결, 실생활에서 겪은 애로사항 해소,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정생활 상담 등 다양하다.
서울의 한 경찰서 정보보안과 형사는 “탈북자들 정착 초기 신변보호관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탈북자들의 향후 방향 등 상담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면서 “어떤 학교에 가야하는지, 직장, 법 등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하고 특히 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형사는 “정착초기에는 특히 자주 만나는데 일정기간이 지나 적응이 된 분들과는 전화통화로 현재 상황을 체크하는 정도로 신변보호를 한다”면서 “탈북자 한 사람당 이렇게 신변보호를 벌이면서 받는 실비는 한 달에 5천원 정도다. 한번 만나서 차 한잔하는 가격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원 수료이후 탈북자 정착 지원 담당, 남북하나재단과 하나센터지만...
본래 하나원 과정을 수료하고 지역사회로 배출된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을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통일부와 그 산하기관인 남북하나재단, 각 지역에 설치돼 있는 29개의 하나센터다.
2005년 이전에는 신변보호담당관이 탈북자들의 초기 정착지원 안내를 맡았지만 현재는 전국 29개의 하나센터가 이를 도맡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은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며 탈북자들의 정착 애로 사항을 해소해주고 있고 하나센터에는 전문상담사들이 파견돼 정착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하나센터에는 87명의 전문상담사, 150여명의 직원, 51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포진해있다.
하지만 신변보호담당관들이 상당수 탈북자들에게 남북하나재단이나 하나센터의 정착지원 보다 더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재단과 센터 측의 수동적인 성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재단이나 하나센터는 지원을 요청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인다. 재단 측에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주창하며 전문상담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해당 인력은 전국 87명에 불과하다.
한 달에 100여명 정도 배출되는 탈북자들에 1:1 매칭을 시킬 수 있는 인력은 확보됐지만 대다수의 인력이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전문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외부의 우려가 있는 것은 아는데 실질적으로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에 도움을 주는 것은 하나센터다. 하나원에서 탈북자가 퇴소하면 하나센터 관계자들이 탈북자들을 직접 모시고 온다”면서 “모시고 오는 시간에 배정받은 집의 도배와 청소까지 해놓고 일정기간 동안은 자원봉사자가 붙어서 장보는 방법, 전입신고 등 실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500여명이 자원봉사 형태라고는 하지만 지속적인 교육을 하고 있고 인력 교체도 일어나지 않아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미 몇 년 동안 계속 하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보다 탈북자들에 대해 잘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각 지역에 포진돼 있는 모든 하나센터들의 역량이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국 29개 센터의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잘하는 센터가 있고 못하는 센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때문에 지속적으로 부족한 센터를 걸러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올해가 그 마지막 해다. 특히 센터가 생긴지 5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정착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들, 신변보호관의 '마크'에 "사생활 침해"라며 '민감'
탈북자들의 정착에 신변보호관들이 일정부분 기여를 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 탈북자들은 신변보호관들의 ‘마크’를 “지나친 간섭”이라며 거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시시각각 소재를 파악하는 경찰들의 전화나, “오늘 뭐했나”라는 추궁식의 질문 등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2007년에 입국해 용인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B씨는 본보에 “어디를 가냐고 묻고, 언제는 대출받은 사실까지 알고 있어서 불쾌했다”면서 “특히 남의 가정사에 대해 쓸데없는 조언을 하는 경찰도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 특히 탈북자 가운데는 여성들이 많고, 신변보호관들 중에는 남성들이 많은데 그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변보호관들을 여성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탈북민 가운데 70%가 여성인 만큼 신변보호관의 여성 비율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신변보호관은 남성이 80%, 여성이 2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경찰 내부에서도 신변보호관을 여성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검토된 바 있으나, 탈북자들의 성향이 고려돼 무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신변보호관들은 탈북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신변보호를 위해 소재파악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을 따돌리고 다니는 분들도 상당수 있는데, 우리들의 신변보호를 사생활 침해로 여기시는 분들”이라면서 “그렇지만 신변보호를 하다보면 당연히 접촉과정에서 침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따지만 대통령 경호도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이다. 밀착하지 못하면 보호하지 못한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신변보호관과 여성 탈북자간 불미스러운 일이 보고가 되는데, 이런 경우 조사를 진행해보면 추측성의 이야기들이 많다”면서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여성 탈북자 비율이 많기 때문에 이와 관련 내부적으로 많은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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