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선수들의 계약금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있다. 최근 FA 대박을 터뜨린 박석민(왼쪽부터)-정우람-김태균-손승락. ⓒ 연합뉴스
KBO리그 FA 시장의 거품이 올 시즌도 현재 진행형이다.
KBO리그는 지난 2013년 롯데 강민호가 4년간 75억원에 잔류하며 심정수의 60억원을 9년 만에 깨뜨렸다. 하지만 강민호의 최고액도 오래가지 않았다. 1년 뒤 KIA 윤석민(4년 90억원), SK 최정(4년간 86억원)과 두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장원준(4년 84억원), 그리고 삼성 윤성환(4년 80억원)이 한꺼번에 강민호를 넘어섰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석민은 NC로 둥지를 틀며 계약기간 4년, 보장금액 86억원(계약금 56억원, 연봉 30억원)에 계약했다. 플러스 옵션 10억원까지 포함하면 역대 최고액이다. 내년이면 34세가 되는 한화 김태균도 84억(4년)이나 받는다.
불펜투수의 몸값이 낮다는 말도 무색하기만 하다. 지난해 삼성 안지만은 심정수보다 5억원 더 많은 4년간 65억원에 계약하며 야구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이는 높아진 기준점은 고스란히 올 시즌으로 이어진다. 정우람은 한화 유니폼을 입으며 84억원(4년)을 받게 되며, 롯데로 이적한 손승락도 4년간 60억원을 받게 된다.
가장 눈여겨봐야할 사항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계약금의 규모다.
역대 최고액(옵션 포함)을 경신한 NC 박석민은 96억원 가운데 계약금이 56억원이다. 보장 금액(86억원)으로만 눈높이를 낮춘다면 총 액수의 65.1%를 계약금으로 쓸어간다는 뜻이다. 대개 FA 계약금은 일시불 또는 2회 분납으로 지급하곤 한다.
비정상적으로 규모가 큰 계약금은 박석민뿐만이 아니다. 손승락도 총액 60억원 중 계약금이 절반이 넘는 32억원이다. 오히려 정우람(36억원), 김태균(20억)의 계약금이 적어보일 정도다.
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SK 최정은 86억원 가운데 42억원을 계약금으로 받았고, 장원준(40억원)과 윤성환(계약금 48억원)도 마찬가지였다.
과도한 계약금은 FA 몸값의 착시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4년 96억원을 받게 될 박석민의 내년 시즌 연봉은 고작 7억 5000만원이다. 연평균 24억원 선수의 몸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는 셈이다.
과도한 계약금은 메이저리그 또는 일본 프로야구와 비교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수준이다. 먼저 메이저리그의 경우 대개 계약 총액의 5~10% 정도만을 사이닝 보너스로 매긴다. 하물며 이 사이닝 보너스는 협상을 이끌어낸 에이전트들에게 주는 것이 다반사다.
LA 다저스와 6년간 3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은 류현진은 500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가 책정됐다. 거액 몸값을 자랑하는 팀 동료 클레이튼 커쇼(7년간 2억 1500만 달러) 역시 10%에 못 미치는 1800만 달러가 계약금이다.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이대호는 3년간 14억 5000만엔의 대박을 터뜨렸고, 이 가운데 계약금은 5000만엔에 불과했다. 일본 내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요미우리의 아베 신노스케는 단년 계약이라는 특수성을 띄지만 계약금이 아예 없는 것이 눈에 띈다.
계약금(사이닝 보너스)은 말 그대로 계약한 선수(또는 에이전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건네주는 일회성 인센티브다. 물론 계약금의 규모가 얼마라고 정해져있지는 않다. 구단과 선수, 양 측의 합의에 의해 형성될 뿐이다.
다만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계약금을 계약 총액과 비교했을 때 소폭으로 책정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포츠는 부상과 부진이라는 불확실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선수가 부상 등으로 당장 은퇴할 경우 보장연봉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계약금은 오롯이 주어야 한다.
사실 KBO리그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계약금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심정수의 60억원 중 계약금은 20억원이었다. FA 광풍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2012년 넥센 이택근도 총액 50억 원 중 계약금은 16억 원이었다.
그러나 FA 몸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게 되면서 선수들은 보장 연봉을 과도하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구단들 역시 발표 연봉을 낮추기 위해 지급되는 돈의 대부분을 계약금으로 몰아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먹튀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옵션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살 깎아먹기가 지속되고 있는 FA 시장의 거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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