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베테랑 투수 서재응(39)이 28일 전격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서재응은 한국야구가 배출한 메이저리거 1세대 중 한 명이다. KIA의 2009년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멤버였고, 선수협 회장까지 역임하며 여러 면에서 야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화려한 야구인생만을 보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아쉬움도 많았다. 전매특허인 칼날 같은 제구력과 강인한 승부근성을 앞세워 정상급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울수 없었다.
선발 투수로서 승리의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한 시즌 두 자릿수 승리를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만하다. 서재응은 뛰어난 제구력으로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명과 함께 호투에도 지독하게 승수가 따르지 않는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서재응의 프로 시절은 빅리그 도전과 KIA 입단 이후로 갈린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인하대 재학 시절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으면서 1998년 미국에 처음 진출했다. 이후 마이너리그를 거치며 2002년 마침내 빅리그로 승격했다. 풀타임 첫 시즌이었던 2003년 32경기(31선발) 9승 12패 평균자책점 3.82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때만해도 10승과 빅리그에서의 성공은 서재응의 야구인생에서 그리 멀지않은 목표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서재응의 불운이 시작됐다. 이듬해 투수 코치와 갈등이 겹치며 5승을 따내는데 그쳤고 2005년에도 8승에 만족했다. 이후 2007년까지 빅리그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다가 국내 유턴을 결정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118경기 606.2이닝 28승 40패 평균자책점 4.60이었다
서재응은 2008년 고향팀 KIA에 입단해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같은 메이저리거 출신이 최희섭과 함께 KIA의 'V10'을 이끄는데 기여했다. 2010년 9승 7패 평균자책점 3.34, 2011년 8승 9패 평균자책점 4.28, 2012년 9승 8패 평균자책점 2.59를 각각 기록하며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KIA 마운드의 3-4선발로 꾸준히 활약했다. 가장 강렬한 모습을 보였던 2012년에는 무려 44이닝 연속 선발등판 무실점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KBO 무대에서도 유독 서재응은 10승과 인연이 없었다. 메이저리그 시절 포함 9승만 무려 세 차례, 모두 3점대 이하의 준수한 자책점을 기록하고도 타선지원을 받지 못해 지독한 아홉수에 발목이 잡혔다.
2013년부터 기량이 급격한 하락세에 빠진 서재응은 선수생활의 마지막 3년간 고작 6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는 김기태 감독의 배려 속에 충분한 간격을 두고 5-6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며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승운은 따르지 않았다. 중반 이후 체력 저하를 드러내며 40이닝 1승 4패 평균자책점 6.95라는 저조한 성적에 머물렀다.
당초 서재응은 2016년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는 목표였다. 연봉 7000만원의 헐값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시즌을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서재응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라며 은퇴의 이유를 밝혔다.
서재응이 KBO리그에서 남긴 성적은 통산 164경기 745⅓이닝, 42승 48패 4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0이다. 서재응의 기량과 명성을 감안하면 역시 아쉬운 커리어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서재응이 남긴 족적과 영향은 한국야구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개인의 불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팀원들을 먼저 챙기고 분위기를 이끌며 ‘응원단장’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KIA도 서재응의 공헌을 인정해 은퇴식 개최와 함께 코치로의 재영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추진 중인 KIA는 최희섭에 이어 서재응까지 은퇴를 선언하며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유니폼을 입은 서재응의 모습은 볼 수 없어도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의 야구인생 2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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