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광주 서구을>
"그래도 천정배지" vs "목 두꺼워져 안된당께"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그래도 천정배지, 호남의 천재 아니던가?" vs. "한 두번 해먹은 놈은 목이 두꺼워져서 안 된당께"
3일 광주광역시는 전날 만개한 벚꽃을 시샘하는 봄비가 내렸다. 하지만 대지를 촉촉히 적신 봄비로도 이 지역의 선거운동 열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바로 광주광역시 서구을 지역이다.
광주 서구을은 호남 돌풍의 주인공인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당초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이 지역에 일찌감치 전략공천된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나름 선전하고 있어 끝까지 지켜봐야할 지역으로 분류된다.
비가 내린 3일 기호 2번인 양 후보는 지역내 호수공원에서, 3번인 천 후보는 지역내 복합쇼핑몰에서 각자 집중유세를 펼쳤다. 지역 유권자들은 대체로 천 후보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양 후보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천정배지, 호남의 천재 아니던가?" vs. "한 두번 해먹은 놈은 목이 두꺼워져서 안 된당께"
광주 대인시장 근처에서 잡아탄 택시 안에서 "천정배랑 양향자 싸움이 재밌죠?"라고 던진 질문에 70 평생을 서구에서 살았다는 백발의 택시기사 정모씨는 대뜸 "말해 뭣하던가. 이미 결정난 싸움 아니던가"라고 말했다.
그는 "우덜이 김대중, 노무현 만들었는디 노무현이가 우덜을 배신했지"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이후 '그 사람들(호남인)이 내가 좋아서 찍어줬겠습니까?'라고 말했었다며 이른바 '친노세력'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어 "천정배씨도 너무 좌편향되긴 했지만서도 사람은 좋아부러"라고 덧붙였다.
양 후보에 대해서는 "(양 후보가) 문재인한테 속은거라. 비열하당께"라고 했다. 수도권의 한 지역으로 나왔으면 무난하게 당선됐을텐데 본보기식으로 광주에서도 기세가 센 편인 천 후보의 지역에 전략공천돼 당선이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마침 이날 광주월드컵 경기장 근처 대형 쇼핑몰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나온 유권자들을 노린 천정배 후보의 유세가 한창이었다. 천 후보는 마트 입구에서 드나드는 유권자들의 손을 일일히 잡으며 지지를 호소했다. 유권자들은 대체로 놀라면서도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기자가 지켜본 1시간여 동안 꽤 많은 유권자가 천 후보와 셀카를 찍거나 반갑게 인사했다.
가족과 함께 쇼핑을 나왔다는 30대 이창규씨는 천 후보와 두 아들을 번갈아가며 사진 찍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이 씨는 "천 후보를 지지한다"면서 '왜 지지하냐'는 물음에 "주민과 참 소통을 잘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양 후보님은 출신도 화순이시고 광주도 처음이시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양 후보가 경기도로 나오셨으면 필시 됐을것인디..."라고 덧붙였다.
평생 민주당을 찍었다는 67세의 허길문씨는 "내가 천정배 양향자 둘 다 만나봤는데 둘다 사람은 좋다"면서도 "양 후보도 훌륭하지만 문재인, 김종인한테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3번을 찍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씨는 지역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경로당이나 아파트 가면 민주당에대한 화풀이 분위기가 조성돼있다"며 "참 아련하다"고 했다.
양향자 후보가 유세를 한다는 운천 저수지로 가기위해 잡아탄 택시에서 40대의 택시기사 백모씨는 "천 후보는 말도 제대로 못하더만 운동은 왜 한단가?"라며 천 후보를 향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역 분위기는 천 후보가 압도적이긴한데, 나는 양향자 찍을라요"라며 양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양 후보가 천정배만 아니었어도 해볼만했을텐디..."라며 아쉬워했다.
"만날 물 갈아서 뭐허냐, 물고기를 갈아야…"
"양향자 찍으면 문재인 또 대통령한다고 할 거 아냐"
비 오는 운천저수지의 맞은편에서는 양 후보가 한창 집중유세중이었다. 우천임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시민들은 양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며 양 후보가 발언을 멈출 때마다 박수와 환호로 응답했다.
유세장 맞은편에서 유심히 이를 지켜보던 황모씨(남·50대)는 "만날 물갈이, 물갈이 해쌓는데, 물을 갈아서 뭐허냐, 물고기를 갈아야지야"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그놈이나 그놈이나 똑같은디 차라리 젊고 처음 나온 사람 찍어줘부릴란다"며 정치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 무기력감을 드러냈다.
양 후보의 유세를 유심히 지켜보다 유세가 끝나자 자리를 떠나는 심모씨(여·40대)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양향자 찍을거예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광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투리가 아닌 완전한 표준어 발음을 구사하는 그는 남편 직장 때문에 광주 서구로 이사온 지 이제 2년됐다고 했다. 양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천 후보는 비록 작년에 재보궐로 당선돼 1년 뿐이었지만 자기 정치하느라 한 게 없는거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며 유유히 사라졌다.
야권의 성지를 놓고 쟁투를 벌이는 두 당 중 한 당의 대표와 다른 당의 대표 영입인사가 맞붙은 지역으로 세간의 관심이 쏠린 광주 서구을은 서로에 대한 비방보다는 서로를 알리는 것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만나 본 유권자들은 대체로 천 후보에 대한 우세를 점치면서도 양 후보가 '안타까운 인재'라며 아쉬워했다.
벚꽃이 흐드러진 서구 운천저수지에서 벚꽃구경을 나왔다는 70대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기자가 둘러 본 서구을의 민심을 축약해 드러냈다.
"이번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게 아니라 차악을 뽑는 선거야. 문재인, 김종인이 대통령한다고 나오는 꼴 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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