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경기 수원정>
"노년층이라고 무조건 1번 찍는 것 아냐" 여론조사마다 박빙 승부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허허, 수원이...아주 까다로운 동네야."
택시 운전대를 돌리며 연신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짓던 이모 씨의 말투가 단호해졌다. 수원 서호초등학교 2회 졸업생인 그는 수원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이후에도 내리 40년을 더 산 '진짜배기 토박이'다. 이 지역 판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수원 인구 110만 중에 나같은 토박이는 30만밖에 안된다. 여긴 다른 데서 많이들 유입이 돼서 종잡기가 어렵지"라며 "여기가 아주 까다롭다.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1번이 아니거든"이라고 말했다.
'전직 경제부총리'인 야권 거물 정치인과 '검사 출신' 여당 현역의원의 빅매치가 벌어지는 수원무는 단일 자치시·군·구 최초로 5개 지역구를 포함한 수원의 신설 지역이다. 종전 수원을(乙) 선거구인 세류 1·2·3동과 권선1·2동, 곡선동을 비롯해 수원정(丁) 선거구였던 영통2동과 태장동이 새로이 묶였다. 수원을은 현역 의원인 정미경 후보, 수원정은 전직 의원인 김진표 후보의 지역구인 만큼 자존심 대결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이슈 없는 이번 선거에서 여야를 통틀어 '수원 비행장 이전'이라는 핫이슈가 통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정미경?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어" vs "그래도 아직은 1번"
5일 오전, 권선구 곡반중학교 건너편 정류장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정류장 뒤편에 붙은 선거포스터를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외근을 나왔다는 31세 남성은 "공약집 온 것도 봤고 인터넷으로도 찾아봤다"며 "정미경은 현역인데 솔직히 이 지역을 위해서 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김진표는 원래 알았고, 비행장 이전도 추진한 걸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꽂은 채 등교길 버스를 기다리던 20대 여성은 "난 잘 모른다"면서도 "선거는 할 거다. 누구한테 (투표)할지 정했다"고 답했다. 현역 의원에 대한 평가와 함께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했는지 묻자 "공약은 둘다 비행장 이야기 하는거 같던데 정확히는 못 봤다. 근데 지금 하던 사람은 별로 잘한 것 같지 않던데"라며 김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곡반정동을 지나 선거사무소가 위치한 세류동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 70대 노인을 만났다. 가로수 사이에 걸린 김 후보의 현수막을 바라보던 그는 "내가 여기서 거의 20년 살았다. 김진표는 여기서 도지사도 나왔고 의원도 했던 사람이다. 이번에는 김진표가 될 것 같다"며 "정미경이는 한 게 없다. 말 잘한다고 나랏일 잘하는 게 아니니까"라고 했다. '60대 이상은 무조건 1번'이 공식처럼 회자되는 데 대해선 대뜸 "그리 쉽게 될 것 같나. (선거는) 말로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택시 기사 김모 씨(63.남)도 조심스레 김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기호2번에 대한 노년층의 표심은 좋지 않지만, 김 후보가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 데다 총리 경력이라는 무게감을 갖춘 탓이라고 조목조목 덧붙였다. '수원 토박이'라는 강점이 작용할 거라고도 했다. 정 후보에 대해선 "노인네들 좋아하게 참 싹싹한 건 있어 그 사람"이란 평을 내놨다.
실제 이날 오후 권선구청을 방문한 정 후보에게선 김 후보와는 또 다른 '살가움'이 돋보였다. 구청 정문 입구에 선 그는 지나가는 구민들을 향해 "저에요, 하하 저 왔어요", "저 왔어요, 저에요 정미경"이라며 특유의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이에 손을 맞잡은 일부 여성들은 "고생이 많다. 힘 내시라"며 손을 두드리기도 했다. 다만 대부분의 구민들은 정 후보의 적극적인 인사에도 고개를 숙인 채, 간단한 목례로 답을 한 뒤 서둘러 구청 안으로 들어갔다.
'까다로운' 수원 민심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드러났다. 이날 오후 김 후보가 권선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해 지원 유세를 펼치자, 단지를 오가던 주민 일부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가던 발길을 재촉하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감춰둔 표심을 물었지만, 연령대별로 드러나기 마련인 대략적인 표심조차 종잡기가 어려웠다.
2명의 중고생 자녀를 둔 40대 박모 씨는 정 후보의 평을 묻는 질문에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 사람 이미지"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 건축이 끝난 직후 입주해 10년 이상 권선에 거주한 주민이다. 박 씨는 "내가 알기론 수원비행장을 김진표 후보가 먼저 법 만들어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며 "아까도 여자들 모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이 한거에 숟가락만 얹는다는 말들을 하더라"고 말했다.
반면 60대 여성 정모 씨는 "그래도 아직 1번 아니겠나"라며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크게 잘못한 거 없는 한 그냥 1번으로 갈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이라고 정 후보의 당선을 내다봤다. 같은 시각 선거 유세를 하던 김 후보를 향해선 "저분도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번에 선거법 위반인가 해서 문제가 된 걸로 알고 있다. 내용은 잘 모르는데 그건 좀..."이라며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을 새누리당 지지자라고 밝힌 이모 씨(57.여) 역시 "현재 의원이 뭐 괜찮게 한 것 같긴 한데, 김진표 씨도 나쁘진 않다"라며 "누구한테 투표할지는 거의 정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정하긴 했지만 남편이 정치를 더 잘 아니까 좀 물어보려 한다"며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50대는 무조건 투표한다? No! "엄마가 뿔났다"
'까다로운 수원 민심'은 유독 '엄마들'의 입을 통해 입증됐다. 통상 50대 이상 여성층은 새누리당에 우호적이라는 일각의 공식을 단번에 깨뜨리듯, 여야를 떠나 정치 전반에 대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유치원생 자녀의 하원 차량을 기다리던 30대 임산부 정모 씨는 "투표를 하긴 해야지. 그래도 내 권리는 행사해야하지 않겠나"라면서도 "근데 국회의원들 하는 것 보면 투표고 뭐고 정말 너무 속이 터진다. 내 세금이 아깝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아까 전에도 한의원 갔다가 사람들하고 한참 욕하고 왔다. 국회의원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며 "기사쓸거면 그런 것좀 써달라. '국민 위한다'는 이야기 지겹다고 전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여성은 총선 민심을 듣고싶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투표 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1학년 자녀를 뒀다면서 "무상급식 한다면서 매년 학교에서 주던 달력조차 안주더라. 급식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게 있는데 교육재정을 완전히 다 빼앗아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애들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선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솔직히 누가 당선돼서 더 나아질 거란 기대도 안 생긴다"며 "투표는 해야겠는데, 하고싶은 마음이 안 든다. 자기들이 우리한테 전혀 믿음을 주지 못했으니까"라고도 했다.
특히 대형음식점에서 점심시간 서빙 업무를 한다는 52세 여성은 "난 그냥 투표 안하려고 한다. 내가 후보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괜히 찍었다가 더 나쁜 결과에 동조하는 게 될까봐 걱정된다. 차라리 안 찍는게 그나마 도와주는 거 아닌가"라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중학생 딸을 둔 40대 학부모 역시 "인지도는 김진표가 더 높다. 근데 애들 키우는 것도 바쁘고, 그 사람이 그 사람같고 별로 관심이 안간다"고 말했다.
아울러 2030에선 여야 후보 모두를 향한 불신이 강하게 드러났다. 30대 여성 이모 씨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난 잘 모른다. 관심이 진짜 없다"며 "그냥 선거때만 와서 저렇게 뽑아달라고 하는 게 다 싫다. 투표를 할지도 생각을 안해봤다"고 잘라 말했다. 1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거주한 주민이지만, 현역 의원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 나도 관심이 없긴 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 잘 했으면 나도 주변에서 듣지 않았겠나"라고 되물었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가던 20대 남성 오모 씨도 당황한 듯한 웃음을 지어보인 뒤 "난 누가 나온지도 잘 모른다. 근데 우리 부모님은 김진표 찍는다고 하시더라"며 "정미경은 여기서 엄청 오래사신 분들,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후보별 공약을 검토했느냐고 묻자, "안 봤다. 근데 별로 보고싶지도 않다. 다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라고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정치 불신이 강한 만큼, 정 후보는 무조건 지역을 다니며 주민들을 만나는 데 올인하겠다는 전략이다. 정 후보는 "나는 유세차를 안 탄다. 무조건 발로 뛴다. 직접 안뛰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며 "오전에는 상가가 문을 연지 얼마 안돼서 들어가면 죄송하기 때문에 일단 소규모 간담회 중심으로 다니고, 오후부터는 그냥 발 닫는대로 어디든 다니면서 바닥민심부터 훑는다. 남은 기간에도 내가 직접 다니면서 시민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오차 범위 내 정 후보와 지지율 접전을 벌이고 있는 김 후보의 경우, 그간 이뤄둔 구체적 성과물을 직접 홍보하며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다. 김 후보는 "그동안 중앙정치를 하면서 이룬 여러가지 성과들이 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해본 경험과 성과물을 갖고서 평가받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제는 지역 곳곳의 바닥을 누비면서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을 시민들께 직접 구전으로 알리고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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