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검사·판사·형사…시청자는 지친다
'피고인' 종영 후 법정 소재 드라마 봇물
여배우들 집중 캐스팅…탄탄한 이야기 관건
'피고인' 종영 후 법정 소재 드라마 봇물
여배우들 집중 캐스팅…탄탄한 이야기 관건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형사, 검사, 판사다. 안방극장이 비슷한 소재로 중무장한 '법드'(법정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을 필두로 정의는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이 잇따라 출격한다.
누명을 쓴 검사 이야기를 다룬 '피고인'은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인기를 얻었다. 선과 악의 대결을 담은 드라마는 정의감 넘치는 박정우 검사(지성)를 통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은 있다는 삶의 이치를 길어 올렸다.
'피고인' 이후 선보이는 법드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는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일깨워준다.
'피고인' 종영 후 봇물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이보영 주연의 SBS 월화극 '귓속말'이다. 남편 지성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보영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대형 로펌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전직 형사 신영주 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법조계와 정재계의 얽히고설킨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시청자의 입맛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전개와 주연 이보영의 호연 등으로 월화극 1위를 고수 중이다.
5월 방송 예정인 지창욱 남지현 주연의 SBS 수목극 '수상한 파트너' 또한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코미디다. 지창욱이 수려한 외모를 지닌 검사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꿈과 삶을 대신 살아가기 위해 검사가 된 인물로 사법연수생 은봉희(남지현)와 엮이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SBS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법정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9월에 선보인다. 이종석이 수습검사 재찬으로 분해 불행한 사건사고를 꿈으로 미리 볼 수 있는 남홍주 역을 맡은 수지와 호흡한다. 드라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노키오'를 쓴 박혜련 작가의 신작이다.
MBC와 tvN 또한 오는 5월과 6월 법정드라마 편성을 확정했다.
MBC는 5월, 현재 방영 중인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후속으로 법정과 액션 스릴러를 합친 장르물인 '파수꾼'을 내놓을 예정이다.
범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일상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사람들이 모여 아픔을 이겨내고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모임을 만드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시영은 사격선수 출신의 전직 강력계 형사 조수지 역을, 김영광은 개천에서 난 '욕망 검사' 장도한 역을 각각 맡았다.
tvN은 오는 6월 조승우 배두나 주연의 '비밀의 숲'을 방송한다. 감정을 잃어버린 검사가 의로운 경찰과 함께 검찰청 내부의 비밀을 파헤쳐 진짜 범인을 쫓는 내용이다.
조승우는 차갑고 외로운 검사 황시목을, 배두나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지닌 의로운 경찰 한여진을 각각 연기한다.
장르물에 강한 OCN은 정재영 김정은 주연의 '듀얼'을 준비했다. 복제인간을 만난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형사와 운명이 엇갈린 두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담는다.
정재영이 거칠지만 속정 많은 강력반 팀장 장득천 역을, 김정은이 출세에 대한 의욕으로 가득 찬 검사 최조혜 역을 맡았다.
소재보다 작품성 중요
법정 드라마가 최근 연이어 나오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관련돼 있다. 우리 사회를 얼룩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현실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대중은 그나마 드라마에서 빛을 본다. 법드는 부패한 권력의 심판, 정의 구현, 진실 추구를 목표로 내달린다. 드라마가 현실 도피처인 셈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사회 부조리,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사회 정의'를 다루는 작품이 연이어 나온다"고 분석했다.
법드의 열풍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가 연이어 나오면서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성의 '피고인' 이어 바로 나온 '귓속말'이 그렇다.
첫 방송 후 시청자들은 "'피고인'과 비슷한 소재라서 피로했다", "복수에 범죄추리물. 왜 비슷한 두 작품을 붙여놓은 거지?", "한국 드라마엔 판사, 검사만 나온다"고 꼬집기도 했다.
'귓속말'은 시청률 1위이긴 하지만 만듦새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이보영의 호연과 빠른 전개는 시청자를 끌어당겼지만 이야기가 쫀쫀하지 않은 건 단점이다.
'사회 부조리 고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다 보니 연결 과정이 헐겁다는 지적이다. 이보영이 위장취업하는 모습, 양심적인 판사가 갑자기 로펌 변호사와 정략결혼을 하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향후 출격하는 작품들은 트렌드 소재에 기대기보다는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 세련된 연출이 잘 어우러져야 승산이 있다.
하 평론가는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등장하는 검사·형사·판사 캐릭터에 서서히 질려가는 단계"라며 "비슷한 소재를 내세우기보다는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고, 아무리 비슷한 소재라도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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