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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이제훈 "그저 그런 배우 되고 싶지 않아"


입력 2017.06.22 07:00 수정 2017.06.24 10:52        부수정 기자

독립운동가 박열 역 맡아 연기 변신

"실존인물 연기, 엄청난 부담 느껴"

영화 '박열'에 출연한 이제훈은 "이준익 감독님을 믿고 영화를 결정했다"고 밝혔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독립운동가 박열 역 맡아 연기 변신
"실존인물 연기, 엄청난 부담 느껴"


"제 필모그래피에서 '박열'은 참 중요합니다. 연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에요. 촬영 기간은 짧았지만 여운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 길었습니다."

반듯한 이미지의 이제훈(32)은 영화 '박열'을 통해 실존 인물이자 독립운동가 박열을 연기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제훈은 오롯이 박열이 됐고, 그런 이제훈의 모습은 스크린에 생생하게 담겼다. 거침없고, 패기 넘치는 박열의 정신을 받은 이제훈에게선 작품에 대한 진심이 보였다.

이준익 감독의 열두 번째 연출작인 '박열'은 간토 대학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실화를 그렸다.

영화는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싸운 박열과 후미코의 심지 곧은 신념을 보여준다. 그간 시대극이 보여준 화려한 볼거리나 영웅들의 활약상보다는 두 사람의 가치관에 중점을 뒀다.

박열의 치열한 삶을 간접 경험한 이재훈을 16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배우 이제훈은 영화 '박열'에서 호흡한 최희서에 대해 "충무로를 이끌 차세대 여배우"라고 극찬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스크린 속 박열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취재진을 만난 이제훈은 "이준익 감독님을 믿고 작품을 선택했다"며 "실존 인물이다 보니 배우로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고, 흥행보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배우의 말마따나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각 신문사에 연락해 사건의 일어났던 날짜의 신문 기사 내용을 모두 요청해 검토하기도 했다. 꼼꼼한 고증을 거친 대본을 토대로 배우는 박열이라는 인물을 해석했다.

영화 속 박열(1902~1974)은 패기 넘치는 20대 청년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결코 약해지거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그에게선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올곧은 심지가 깊게 박혀 있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박열은 고등학생이었어요. 국내 항일운동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일본으로 갑니다. 그 어린 나이에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주입식 사상과 교육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면서 주체적으로 신념을 구축합니다. 상황과 현실을 피하지 않고 행동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배우는 겉으로 드러난 '활약상'보다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한 인간의 신념과 가치관을 연기해야 했다. 이제훈은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고민했다며 "그의 신념과 가치관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표현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티저 포스터도 화제였다. 이제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 캐릭터로 빙의했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과 수염을 기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테스트 촬영 때 주변 분들이 저인지 모르시더라고요. 하하. '이제훈'이라는 사람이 지워지고, 온전히 박열이 된 모습이 포스터에 실렸는데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걱정했습니다. 근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시 나온 신문기사 속 박열의 모습을 그대로 입혔거든요."

영화 '박열'에 출연한 이제훈은 "어떻게 하면 '박열'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시대가 시대인지라 배우들은 수준급 일본어 대사를 소화해야 했다. '압박' 그 자체였다. 이제훈은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극복해야만 했다"며 "일본어 대사를 녹음해서 계속 듣고, 연습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 시간을 채우지 않았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박열'을 본 일본 관객들에게도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게끔 잘 해내고 싶었다"고 미소 지었다.

이 감독과의 호흡을 묻자 "작품을 함께한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회상했다. "탁월한 선택이었죠. 이 감독님이었기 때문에 '박열'이 나올 수 있었어요. 감독님은 배우에게 연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꼰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감독님과 함께하면 마냥 재밌어요. 소년 같이 해맑으십니다. 하하.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 영화를 만드는 열정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누구보다 뜨거운 분입니다."

이제훈은 마지막 촬영 때 펑펑 울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매 순간 긴장하며 촬영했다는 그는 "후회 안 되는 연기를 보여줘야 했다"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을 항상 느끼다 촬영이 끝나니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전 제가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스태프들을 보니 그분들이 절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박열은 없었어요."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사랑까지 공유한 최희서와의 호흡도 돋보였다. 최희서는 '박열'의 수확이다. 이제훈은 독립영화를 통해 최희서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다 '동주'를 통해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했고,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할 사람은 최희서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네코 후미코와 희서 씨가 닮았어요. 예술적 소양도 갖췄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박열'을 통해 최희서 씨가 보석처럼 빛날 거예요. 분명 충무로를 이끄는 차세대 여배우가 될 겁니다."

영화 '박열'에 나온 이제훈은 "'박열'의 신념과 가치관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표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제훈은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박열이라는 인물도 몰랐고, 역사를 놓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엮이지 않은 걸 외면하지 않았나 싶어 부끄러웠다"며 "지금도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이 많다. 박열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 그분들의 정신과 그분들이 기록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훈은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관객들이 '박열'을 통해 역사 속에 묻힌 분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삶의 뿌리를 찾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느끼셨으면 합니다. 두 번, 아니 세 번 보세요. 첫 번째는 인물, 두 번째는 메시지, 세 번째는 시대 공부에 집중하면서 보셨으면 합니다. 곱씹을수록 의미가 있는 영화거든요."

극 중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각각 22세와 21세였다. 배우에게도 20대 초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나 역시 꿈과 열망에 가득 차서 무언가 배워나갔던 시기였다"고 했다.

"배우라는 꿈을 실천에 옮긴 게 그때였습니다. 당시 내가 배우로서 자질이 있는지, 그리고 연기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근데 배우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1~2년 두고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러다 스물다섯 살 때 전공을 연기로 바꾸면서 새로운 학교에 들어갔어요.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연기에 온전히 뛰어들었습니다."

영화 '박열'에 출연한 이제훈은 "그저 그런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며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제훈은 입대 전, 후 '파파로티'(2012)와 '비밀의 문'(2014)에서 대선배 한석규와 호흡했다. 무한한 영광이었다. 한석규는 이제훈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시그널'(2016)에서 호흡한 김혜수를 통해선 포용과 여유를 배웠다.

이제훈은 훈훈한 이미지 덕에 여성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달달한 로맨스를 바라는 팬들이 있다. 이제훈의 연기 철학은 확고했다. 로맨스물을 소화할 땐 일부러 기간을 두고 선택한다고. 여운을 남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단단한 소신을 차분하게 들려줬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중과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작품 속에서 사는 게 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그저 그런 배우'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선택보다는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야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마냥 자상할 것만 같은 이제훈의 실제 성격을 물었다. 그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고 웃은 뒤 "그간 맡은 캐릭터 속에 내가 있다. 연애할 때 다정다감한 모습, 무뚝뚝한 모습이 다 있다"고 했다.

쉴 때는 혼자 극장에서 영화는 게 낙이란다.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지난해 9월부터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한 그는 보고 싶은 영화로 '꿈의 제인'과 '용순'을 꼽으며 두 눈을 반짝였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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